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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태안 초등교 우울한 ‘환경수업’…부쩍 어른스러워진 바닷가 아이들

입력 2007-12-14 03:02업데이트 2020-12-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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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불쌍해요 갈매기 다시 돌아올까”
방제작업 바쁜 부모 대신 학교서 오후 5시까지 돌봐

‘니 모습이 보여도. 기름이 보여도. 바로 앞에 있지만. 도와주지 못한 나.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바다야.’(박예찬)
13일 오전 11시 반경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초등학교 6학년 교실. 평상시 같으면 시끌벅적했을 교실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무거웠다.
6학년생 16명의 눈망울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지은 시를 선생님에게 내밀던 몇몇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붉어진 눈을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목이 멘 아이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시와 그림들이 들려 있었다. 전날 ‘환경수업’의 일환으로 선생님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제작업 현장에 나가서 느낀 점을 표현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적어 온 시에는 대부분 ‘바다에게 미안하다’ ‘자연이 울고 있다’ ‘엄마 아빠가 불쌍하다’ ‘사람들이 먹고살 길을 잃었다’ ‘바다가 죽었다’ 등 동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검은 바다’ ‘눈물 흘리는 사람’ ‘검은 구름’ 등 우울한 표현 일색이었다.
박예찬(12) 군은 “바닷가에 가 보니 갈매기, 조개, 불가사리가 다 없어졌더라”며 “매일 만나서 소중함을 잘 몰랐던 친구가 말도 없이 영영 떠나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걔들이 다시 돌아올까요”라고 선생님에게 묻는 박 군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가득했다.
공필재(12) 군은 “과연 바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라며 혼잣말을 했다.
아이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6학년 담임교사인 이지현(34·여) 씨는 “아이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시를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든 일로 갑자기 성숙해진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태안의 아이들은 마음만큼 몸도 아팠다.
매일 아침 담임교사들은 자기 반 학생들의 건강상황을 체크한다. 아직 쓰러지거나 병원에 실려 간 학생은 없지만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날도 선생님이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안 좋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자 16명 중 9명이 손을 들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75명의 초등학생과 병설유치원생 14명까지 모두 89명이 재학 중인 모항초등학교는 이번 사고로 방제작업을 하는 부모들을 돕기 위해 오후 5시까지 연장 수업을 하고 있다.
태안=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촬영: 김재명 기자


촬영: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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