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 동창 3명 1년간 주택 148차례 4억5000만원어치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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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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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로…車운전-집 털기-장물판매 역할분담
좋았다…명품 치장-리조트 회원권 호화생활
망했다…훔친 수표 다시 도둑맞아 꼬리 잡혀

“한 번 놀아보지 않겠어?”

초등학교 동창생이자 어릴 때부터 ‘절친’이었던 박모 씨(38)와 이모 씨(A·38), 또 다른 이모 씨(B·38)는 어느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생각을 서로에게 털어놨다. 15∼19세 때부터 도둑질을 시작한 이들에게 ‘논다’는 말은 절도행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판은 더 커지고 수법은 대담해졌다. 1년간 이들이 턴 곳만 148가구, 훔친 금품과 현금은 총 4억5000만 원어치에 이르렀다. 침입한 집에 혼자 있는 부녀자를 욕보이는 패륜적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 가스배관 타고 10분 만에 털어

첫 범행 장소로 택한 곳은 이 씨(A)가 살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 수십 년 ‘절친’ 답게 손발도 척척 맞았다. 이 씨(B)가 렌터카를 이용해 박 씨와 이 씨(A)를 범행 대상 지역으로 실어 나르면 이들은 범행 장소가 겹치지 않도록 ‘담당 구역’을 정해 재빠르게 골목으로 사라졌다. 몰래 들어가기가 쉽고 방범이 허술한 공동주택이 주로 범행 대상이 됐다.

이들은 지하층과 1층은 물론이고 2, 3층까지 쉽게 침입했다. 가스배관의 이음매를 연결하는 볼트 등 돌출된 부분을 사다리로 활용했다. 창살 모양의 방범창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발로 조금만 힘주어 밀면 쉽게 휘어졌다. 한 집을 터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된다. 한 번 ‘출동’하면 한 사람당 3, 4가구씩 털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곳곳에서 1주일에 2, 3차례씩 집을 털었다.

박 씨는 혼자 있는 여성에게는 성폭행을 해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신고하지 못하도록 알몸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해 2월 송파구 방이동에 사는 25세 여성을, 올해 7월에는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30세 여성을 성폭행했다. 25세 여성은 피해 직후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으며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컴퓨터 조립판매 가게를 운영하던 이 씨(A)는 훔친 컴퓨터 부품 중 비싼 물건은 장물로 내다 팔고 싼 물건은 자신의 가게에서 조립하는 컴퓨터에 붙여 내다 팔기도 했다.

○ 명품 구입, 도박으로 탕진

이들은 훔친 돈으로 성실히 사는 중산층이 누리기 힘든 호화 생활을 했다. 박 씨는 강남구 삼성동에 월세 160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살면서 고급 승용차를 두 달마다 바꾸고 140만 원짜리 루이뷔통 구두 등 명품으로 치장했다. 유흥업소 여종업원에게 1000만 원을 주고 ‘계약 동거’를 하기도 했다. 이 씨(A)는 해외 골프장과 고급 숙소 이용권이 포함된 유명 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했다. 스크린 경마에도 빠져 한 판에 1000만 원을 베팅하면서 돈을 탕진했다. 화면 속을 달리는 말에게 뿌린 돈만 수억 원이었다.

○ 좀도둑에 지갑 털려 덜미

그러나 이들의 절도 행각은 훔친 수표를 다시 좀도둑에게 도둑맞으면서 덜미가 잡혔다. 도난 신고된 수표가 든 지갑을 사우나 사물함에 넣고 휴게실에서 잠들어버린 사이 사우나에 좀도둑이 들어와 이 지갑을 훔쳐간 것. 좀도둑은 이 수표를 사용하면서 지갑 속에 있는 박 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뒷면에 이서했다. 경찰이 수표 뒷면에 적힌 박 씨의 주민번호 등을 토대로 뒤를 쫓기 시작해 덜미가 잡힌 것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수사 시작 이후 박 씨 신원을 파악했지만 바로 검거하지 않고 박 씨의 주변을 잠복하며 뒤를 밟았다. 결국 경찰은 잠복수사 4개월 만인 지난달 10일 박 씨를 검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명의 이 씨와 이들이 훔친 귀금속을 되판 장물아비 최모 씨(50) 등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박 씨에겐 성폭행 혐의가 추가됐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가스배관의 돌기를 밟고 위로 올라갔던 만큼 가스배관에 표면이 매끄러운 덮개를 씌우고 방범창도 강도가 센 것을 골라 설치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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