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도서관 오기 힘드시죠? 집까지 책 배달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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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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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구, 장애인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인기
읽을 책 전화로 신청하면 월 5권까지 무료로 전달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현정 씨(왼쪽)가 문보경 거마도서정보센터 주임으로부터 대출한 책을 전달받고 있다. 사진 제공 송파구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현정 씨(왼쪽)가 문보경 거마도서정보센터 주임으로부터 대출한 책을 전달받고 있다. 사진 제공 송파구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되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거동이 불편한 지체 장애인들이다. 지난달 25일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장애인들은 외출하기가 몹시 힘들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사는 이현정 씨(36·여)는 이날 전화기를 들었다.

“저, 혹시…그…리스…로마 신화 책…좀 빌릴 수…있을까요?” 이 씨가 전화를 건 곳은 송파구 거여동의 거마도서정보센터. 전화를 받은 문보경 주임은 이 씨 주문에 따라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1∼3권을 찾아 대출로 처리했다. 책배달 전용 가방에 책 세 권을 챙긴 문 주임은 곧장 이 씨가 오후 일정을 보내는 거여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향했다.

돌을 갓 지나 경기를 일으켜 뇌병변 1급을 앓고 있는 이 씨는 전동 휠체어에서 종일 지낸다. 쉴 새 없이 뒤틀리는 그의 신체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곳은 ‘입’. 이 씨는 입으로 그림도 그리고 컴퓨터 타자도 치고 책장도 넘긴다. 불편한 몸 때문에 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던 이 씨는 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화 전집부터 만화책 ‘공포의 외인구단’까지 가리지 않고 다 읽었다. 하지만 옆에서 늘 책을 챙겨주던 어머니와 이제 떨어져 살고 있고, 센터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직접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책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이날 처음으로 도서관에 전화해 ‘사랑을 담은 찾아가는 도서정보 서비스’ 신청을 했다. 관내 거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3주일에 1인당 3권씩 무료로 빌려주는 서비스다. 책을 건네받은 이 씨는 “입으로 책을 넘기다 보니 침이 묻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3권까지 다 읽으면 추가로 대출 신청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다.

이날 두 번째 주문은 문정동에서 걸려왔다. 평소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고모 씨였다. 아홉 살배기, 네 살배기 두 딸의 엄마인 고 씨는 21세 때 겪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쓴다. 남편 역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다. 부부는 다른 건 못해줘도 아이들에게 책은 부족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목발을 짚고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았고 지난해 4월 이 서비스가 생긴 뒤부터는 이를 애용하고 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준 덕분에 지난해 학교에 들어간 큰아이는 남들보다 늦게 한글을 깨쳤지만 이해도는 또래보다 좋은 편이다.

이날 고 씨가 주문한 책은 아동용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해요’ 시리즈 10권. 고 씨는 평소 인터넷이나 TV, 신문 등에서 유심히 본 책을 적어뒀다가 도서관에 대출을 문의하곤 한다. 대출을 부탁하면 최대 이틀 안에 도서관 직원들이 책을 싸들고 집으로 찾아온다. 문 주임을 비롯한 직원들은 부족한 예산 때문에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고 씨처럼 거리가 먼 집에는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찾아간다. 이날 책을 들고 집에 찾아온 문 주임에게 고 씨는 지난번에 빌린 ‘바리데기’와 ‘외딴방’을 반납하고 새 책을 받았다. “도서관에 가면 눈앞에 책들이 쫙 펼쳐져 있잖아요. 그게 가장 기분 좋은 점 중 하나인데,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 속상해요.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안 찾아가도 이렇게 직접 와주시니 아주 편하고 좋네요.”

거마도서정보센터(02-449-2332) 외에 송파도서관도 월 1회 1인 최대 5권까지 무료로 책을 배달해준다. 대출 신청은 전화(02-404-7914, 5)로도 가능하다. 송파어린이도서관도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한다. 만 12세 이하 시각장애 아동이면 급수 제한 없이 점자도서를 1인당 1회 5권까지 2주일간 빌려볼 수 있다. 송파어린이도서관에는 점자도서 553권이 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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