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서울대 출신 남성 → 외고-서울대 출신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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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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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2010년 신임 판사 377명 10년 단위 분석해보니

《22일 처음 법복을 입는 신임 판사 89명의 표준형은 ‘외국어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29세의 서울 출신 여성’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대법원과 사법연수원 자료를 바탕으로 1980년(55명), 1990년(80명), 2000년(153명), 2010년(89명) 등 10년 간격으로 4개 연도에 각각 임관한 판사 총 377명의 나이와 성별 출신학교 등을 전수 조사한 결과 명문고-서울대 법대 출신의 균질한 집단이었던 법원은 다양하고 중층적인 구조로 바뀌었다. 1980년에는 경기고(14명·25%)와 서울대 법대(43명·78%)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2010년에는 외국어고 출신이 17명(19.1%)으로 약진했고 서울대 법대 출신은 26명(29.2%)으로 크게 줄었다.》1980년 사법 독립 기치 - 외압에 버티려 판례 중시
1990년 평준화 세대 - 승진경쟁속 관료화 본격화
2000년 사시門 확대 - ‘운동권 판사’ 대거 임관
2010년 N세대 등장 - 법원내 소통-전문화 과제

○ 1980년…평준화 前 K-S 라인 주류

김능환 차한성 대법관과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980년에 판사로 임관했다. 법원의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는 1980년 임관 세대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 법복을 처음 입었다. 이들은 평준화 이전 대표적인 명문고였던 경기고(14명)와 경북고(5명), 전주고(4명), 광주제일고(3명) 등을 졸업했다. 10명 중 8명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출신지역별로는 △서울-경기 11명 △대구-경북 11명 △광주-전남북 11명 △충남북 11명 △부산-경남 10명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당시 군사정권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이 판사를 임명하도록 했다. 보안사령부 관계자가 법정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중요 형사 사건에 압력을 행사했다. 엘리트 의식이 강했던 당시 판사들은 외압을 버티기 위해 판례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 1990년…특정고 편중 현상 사라져

1987년 사법시험 준비생 A 씨는 노태우 대통령의 6·29 민주화선언을 도서관에서 맞았다. 그해 사시에 합격한 A 씨는 2년간의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뒤 1990년 판사에 임관했다. 군사정권 아래서 임명장을 받기 싫다며 변호사 개업을 한 동료도 있었다.

민주화와 함께 사법부 독립을 기대했던 1990년 임관 동기들은 평준화 세대다. 서울대 출신에 법학 전공자가 여전히 다수였지만 특정 명문고 출신 편중 현상은 사라졌다.

첫 부임을 앞둔 A 씨는 내심 형사 재판부에 배치되지 않길 바랐다. 시국사건 재판에 잘못 휘말렸다가 두고두고 낙인찍힐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민주화 바람과 함께 1, 2차 사법파동을 거친 법원은 1990년대 초반 재판의 독립을 확립해 나갔다.

이때부터 법원 내에 승진 경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부 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을 못하자 인사 평정에 신경을 쓰고, 잘나가는 선배와 같은 연구모임에 가입하는 풍토도 생겼다. 법관 관료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 2000년…늦깎이 386세대 임관

법무부는 1997년 사시 합격자를 600명으로 늘렸다. 2년 사이 배로 늘어난 것. 가장 큰 수혜자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한 늦깎이 고시생들이었다. 2000년 임관 판사들의 평균 나이는 31.9세로 껑충 뛰었다. 예년 평균보다 세 살이 많다. 이들은 자유분방과 반항을 의미하는 X세대(1970년대생)와 함께 사법연수원을 다니며 판사를 꿈꿨다. 2000년 신임 판사로 임관한 386세대는 30명에 이르렀다. 전체의 5분의 1에 달했다.

비(非)법학 전공자가 41명(26.8%)으로 늘어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법대 출신의 아성이었던 판사들의 세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옛 명문고 출신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서울대 출신도 93명(60.8%)으로 줄었다.

○ 2010년…개성-실리 N세대 등장

올해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신임 판사들의 주류는 외국어고-서울대 출신의 이른바 ‘F-S’라인이다. 한영외고(6명), 대원외고(4명), 명덕외고(3명) 등 외고 출신이 17명(19.1%)이다. 과학고 출신 3명까지 합치면 특목고 출신이 20명(22.5%)에 이른다. 전공도 다양해졌다. 초임지가 서울중앙지법인 성적우수자 12명 중 절반이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반면 출신지역은 서울(34.8%), 경기(14.6%)가 절반에 달할 정도로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해졌다.

선배 판사들 사이에서는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N세대 법관’들이 사이버 세상의 간접적 경험에만 의존해 재판에 임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용근 사법연수원장은 “30년 동안 재판의 독립은 어느 정도 확립됐다”며 “후배 법관들은 선배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전문화에도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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