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승 1무… 법원이 손들어준 ‘박연차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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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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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제공 물증 없어도 진술 일관돼 16명 유죄
유일한 무죄 선고 사건도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
대질신문 - 재판때 오리발 내밀던 피고인들 당혹

《17전 16승 1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사진)의 정·관계 로비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재판 결과를 보면 ‘박 전 회장의 입’은 불패(不敗) 행진을 하고 있다. 이른바 ‘박연차리스트’에 오른 정·관계 인사 가운데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이 유일하다. 김 의원의 혐의는 박 전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개발 사장 등에게서 후원금 2000만 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는 것. 이마저도 법원은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하면서 “후원회 기부 한도를 초과해서 정치자금을 받는 경우 법률상 처벌 대상을 후원인과 후원회에 한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김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박연차 리스트’는 통째로 ‘유죄(有罪) 리스트’가 된 셈이다.》
박연차 게이트는 박 전 회장의 진술이 가장 유력한 증거였고, 기소된 이들 대부분이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나서 상당수가 무죄를 선고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박 전 회장의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진술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의원직 사퇴서를 낸 상태인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처음에는 5만 달러를 받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음식점에서 박 전 회장과 단둘이 만난 일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신용카드로 식대를 결제하면서 VIP 대우를 받는 국회의원과 동석해 10% 할인까지 받았다며 반박했다. 김종로 전 부산고검 검사가 골프장에서 5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부인했을 때도 박 전 회장은 “김 검사가 골프장 안의 사우나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내 라커 앞으로 데리고 가 돈을 줬다”는 식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진술해 김 검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1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집행유예가 선고된 민주당 서갑원 의원의 재판 때도 박 전 회장은 돈을 준 날 골프장에서 오간 대화와 서 의원의 차에 돈을 실어준 정황을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진술했다.

돈을 받은 이들 중 일부는 재판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의 주장이 거짓이라며 강하게 반박했지만 박 전 회장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가령 이광재 전 의원은 법정에서 “당신이 더 큰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내가 안 받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박 전 회장은 “그 말은 맞지만 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고 맞섰다.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박 전 회장은 혐의를 부인한 사람들과 수차례 대질할 때마다 “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돼 미안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며 맞섰다.

박 전 회장의 진술 가운데 법원이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미국 뉴욕의 한 식당 주인을 통해 이광재, 서갑원 의원에게 달러화를 건넸다는 부분으로 박 전 회장이 돈을 준 현장에 직접 없었던 경우뿐이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 관련자 17명에게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모두 징역 48년에 벌금 2000만 원(추징금은 제외). 이에 대한 법원의 선고형량은 징역 31년 6개월에 벌금 1000만 원으로 구형량의 60% 선에 이른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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