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공부의 기술<7>고전문학 쉽게 읽는 법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49분


코멘트
《언어영역이 4등급 이하인 학생에게 고전문학은 ‘외계인’이다. 처음 보는 언어를 구사한다. 가끔 한자까지 섞인 작품을 보면 ‘네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다. 제시된 고전만을 읽고 푸는 문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이 혼합된 문제도 출제된다. 작품 ‘해독’에 쩔쩔매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언어 1등급 학생들은 고전문학을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로 본다. 진입장벽은 다른 곳보다 높다. 하지만 캠프를 탄탄히 구축할수록 남은 등반은 수월해진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정리하면 언어영역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고전문학은 고1, 2 때 마무리해야한다는 언어영역 고득점자들의 주장은 이 때문이다. 낯선 고전문학을 전략적인 베이스캠프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익숙해져라’가 그 해답이다. 함께 몇 가지 고전을 접해볼 것이다. 고전이라면 겁부터 내던 학생도 180도 달라질 것이다. 일단 익숙해지면 고전문학에 할당된 13점에서 18점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라
5가지 중 하나!… 고전, 주제를 알면 못풀 문제가 있을쏘냐~

■ 익숙해지기 1
너의 감정 바로 그것, 조상님도 똑같아!

고전은 옛날 옛적 조상님들이 쓴 글이라 어렵고 낯설다고? 옛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는 감정과 경험을 표현한 것이 시대를 초월한 문학의 본질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독후감, 일기, e메일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쓸 수 있지만 당시엔 식자층이 주로 글을 썼다. 그들이 썼던 생소한 어휘, 딱딱한 어투, 이해하지 못할 표현법이 고전을 낯설게 만드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표현법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필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화창한 가을 오후다. 고등학생인 당신은 중간고사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나가서 맛있는 피자를 먹고 싶은데 이런! 함께 갈 여자친구가 없다. 홀로 피자집에 갔다.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있는데 초등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머리를 맞대고 알콩달콩 피자를 먹는 그들을 보며 당신은 이렇게 절규할 것이다. ‘쟤들도 애인이 있는데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기원전 17년.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왕은 황후 송 씨가 죽자 치희와 화희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유리왕은 치희를 몹시 사랑했지만 고구려의 세력 확장을 위해 유력 세력의 딸인 화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유리왕이 없는 틈을 타 두 여인의 싸움이 벌어졌다. 다툼 끝에 친정으로 돌아간 치희를 달래기 위해 유리왕이 찾아가지만 화가 난 치희는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지고 돌아오며 ‘아…. 사랑하지도 않는 화희와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한숨 짓던 유리왕 앞에 꾀꼬리 두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정답게 지저귄다. 여기에서 탄생한 고전시가가 우리가 잘 아는 ‘황조가’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 암수 서로 정다운데 / 외로울 사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갈꼬’』

수능 시험에 등장하는 작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고전문학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2500학년도 수능에는 가수 아웃사이더의 노래 ‘외톨이’가 고전시가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전운문은 그저 ‘당시’ ‘그들’의 노래인 셈이다.

■ 익숙해지기 2
주제 파악했다면 절반 읽은 셈

고전문학의 주제를 파악할 줄 아는 힘은 주제를 완벽하게 외울 수 있는 암기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주제만 알면 답이 보인다. 게다가 고전문학의 주제는 결코 난해하지 않다.

글의 주제는 크게 다음 다섯 가지다. ①우국충정 ②강호한정 ③남녀상열지사 ④고발·풍자 ⑤권선징악이 그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한 것이 첫 번째다. 이 주제에는 유교적인 덕목을 강조하는 내용도 더해질 수 있다. 자연 속에 노니며 풍류를 즐기는 것도 단골 주제. 이현보의 ‘어부단가’, 권호문의 ‘한거십팔곡’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랑노래는 어떨까?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빠지지 않았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주제의 작품은 조선 후기 사대부의 몰락과 함께 등장했다. 허균의 ‘홍길동전’이 대표적. 그렇다면 2008학년도 수능에 출제됐던 조선중기 시조, 권호문의 ‘한거십팔곡’의 일부를 읽으며 주제를 파악해보자.

『평생에 원하는 것이 다만 충효뿐이로다(평생 원하는 것은 충성과 효도다) /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를쏘냐(이 두 가지를 안 하면 날짐승 들짐승과 뭐가 다르겠냐) /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 년을 허둥대노라(충효를 실천하려고 십년동안 허둥댔다)

계교(計較)* 이렇더니 공명이 늦었어라(남과 견주다보니 이름을 날리는 게 늦었다) / 부급동남(負東南)*해도 이루지 못할까 하는 뜻을(정말 열심히 해도 이루지 못할 뜻을) / 세월이 물 흐르듯 하니 못 이룰까 하여라(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니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

비록 못 이뤄도 임천(林泉)이 좋으니라(비록 못 이뤄도 난 자연이 좋다) / 무심어조(無心魚鳥)는 절로 한가하나니(욕심 없는 물고기와 새는 절로 한가하니) / 조만간 세사(世事) 잊고 너를 좇으려 하노라(조만간 세상일 다 잊고 너를 따를까 한다)

강호에 놀자 하니 임금을 저버리겠고(강과 호수에서 놀려고 하니 임금을 모시지 못하겠고) / 임금을 섬기자 하니 즐거움에 어긋나네(임금을 섬기려고 하니 별로 즐겁지 않네) /혼자서 기로에 서서 갈 데 몰라 하노라(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이다)

어쩌랴 이러구러 이 몸이 어찌할꼬(어찌할까) / 행도(行道)도 어렵고 은둔처도 정하지 않았네(벼슬로 나아갈 길도 어렵고 있을 곳도 정하지 않았네) / 언제나 이 뜻 결단하여 내 즐기는 바 좇을 것인가(언제쯤 확실하게 결정해서 내가 좋아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고 싶지만 자연에서 안빈낙도 하고픈 작가의 소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작품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를 잡아내면 된다.

■ 익숙해지기 3
고전소설, 인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라

모르는 단어가 많다고? 어색한 표현이 거슬린다고? 대세엔 지장이 없다. 어려운 부분은 과감히 건너뛰어도 된다. 고전소설은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단,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을 명심할 것! 인물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며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2009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된 고전소설 ‘박씨전’의 일부를 살펴보자.

『처사가 말했다. “제가 한 딸을 두었으나 십육 세가 되도록 혼처를 정하지 못하였삽기로 천하를 떠돌다가, 다행히 존문에 이르러 아드님을 보니 마음에 드는지라. 여식은 용렬하고 재주가 없으나 존문에 용납될 만하니, 외람되오나 혼인을 정함이 어떠하오이까?” (처사가 말했다. “저에게 16세인 딸이 있습니다. 댁의 아드님을 보니 마음에 드는데 부족하지만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상공이 ‘처사의 도덕이 높으니 딸 또한 영민하리라.’ 생각하고 답했다. “존객은 선인이요. 나는 속세 사람이라. 어찌 인간 세상 사람이 선인과 혼인을 의논하리까?” (상공은 ‘처사를 보니 딸도 영리하겠다’고 생각하고 “당신은 선인이고 나는 세상 사람인데 어떻게 혼인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처사가 답했다. “상공은 아국 재상이요. 나는 미천한 인물이라. 미천한 인물이 귀댁에 청혼함이 극히 불가하오나 버리시지 아니하오면 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공이 즐겨 즉시 혼인을 허락했다. (처사가 답했다. “당신은 우리나라 재상이고,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부족한 딸이라 혼인이 어렵겠지만 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상공은 바로 결혼을 허락했다.) 』

작품에 등장하는 ‘∼하였삽기로’ ‘하오이까’ ‘불가하오나’ 등 표현과 ‘존문’ ‘여식’ ‘용렬’ ‘아국’ 등 낯선 단어는 그냥 넘기면서 현대어로 풀어봤다. 처사가 상공에게 자신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자 상공이 허락했다는 글의 주요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단, △처사→존객 △딸→여식 △상공→재상→공 등 한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고전소설의 특징은 주의 깊게 보아야한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반드시 현대어 해설을 참조해 정확한 뜻을 찾아보자. 정확한 해설과 자신의 해석의 차이를 좁히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이번 ‘공부의 기술’ 취재에는 다음과 같은 고전문학의 ‘달인’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1】 장지연 씨(고려대 경제학과 07학번)

【2】 김원빈 씨(연세대 영어영문학과 08학번)

김 씨는 수험생 커뮤니티 ‘수만휘’에서 멘터로 활동 중. 장 씨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2회(2006, 2007학년도) 만점을 받았습니다.

▼고전문학 읽기, 3가지 감상포인트!▼
[고전문학과 익숙해지기] 실전편

2009학년도 수능 언어영역(홀수형) 28∼33번 문제에 대한 지문으로 출제된 고전시가 ‘춘면곡(春眠曲)’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광규의 ‘나뭇잎 하나’와 함께 출제됐다.

고전문학에 익숙해지기 위한 세 가지 감상 포인트를 기억하며 작품을 읽어보자. 첫째, 고전은 어렵지 않다. 운문은 ‘발라드’ 가사라고 생각하자. 둘째, 분명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주제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필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대하라. 마지막으로 모르는 단어는 일단 넘겨라. 제대로 된 해제는 문제를 푼 뒤 참고서나 해설서를 참고해 정리하라.

‘고전문학과 익숙해지기’의 목표는 ‘쉽게 읽기’다. 처음에는 아래 해설을 가리고 원문 그대로 읽어보자. 두 번째에는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2학년 김원빈 씨가 제공한 해설과 함께 읽어보자.

삼경에 못 든 잠을 사경 말에 비로소 들어

(잠 못 들어 뒤척이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어)

상사(相思)하던 우리 님을 꿈 가운데 해후하니

(항상 생각하던 나의 그녀를 꿈에서 만났어)

시름과 한(恨) 못다 일러 한바탕 꿈 흩어지니

(얼마나 사랑하는지, 걱정과 한을 한참동안 이야기했는데 결국 꿈이었어)

아리따운 고운 얼굴 곁에 얼핏 앉았는 듯

(예쁜 얼굴의 그녀가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

어화 아뜩하다 꿈을 생시 삼고지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 그대와 함께 있던 꿈을 현실로 삼고 싶다)

잠 못 들어 탄식하고 바삐 일어나 바라보니

(잠 못 들어서 한숨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라보니)

구름산은 첩첩하여 천리몽(千里夢)을 가려 있고

(창밖으로 산이 구름에 첩첩이 둘러싸여 한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꿈까지 가리고)

흰 달은 창창하여 두 마음을 비추었다

(훤히 뜬 달이 우리 님과 나의 마음을 비춘다)

좋은 기약 막혀 있고 세월이 하도 할사

(우리 님과 나와 이어질 수 있는 약속은 꽉 막혔고 세월은 오래도 지났다)

엊그제 꽃이 버들 곁에 붉었더니

(엊그제는 꽃이 피었었는데)

그 결에 훌훌하여* 잎에 가득 가을 소리라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리니 벌써 가을이구나)

새벽 서리 지는 달에 외기러기 슬피 울 제

(새벽 달 근처엔 솔로인 외기러기도 외로워서 슬프게 우는구나)

반가운 님의 소식 행여 올까 바라더니

(반가운 그녀가 혹시나 올까 해서 바라봤는데)

아득한 구름 밖에 빈 소리뿐이로다

(아득한 구름뿐 기대했던 사람은 없네)

지리하다 이 이별이 언제면 다시 볼까

(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어화 내 일이야 나도 모를 일이로다

(내 일도 나도 모르겠구나)

이리저리 그리면서 어이 그리 못 가는고

(이렇게 그리운데 어떻게 가지는 못할까)

약수(弱水)* 삼천 리 멀단 말이 이런 곳을 일렀구나

(삼천리 멀다는 말이 이런 곳을 말하는 것이구나)

[A]

산 머리에 조각달 되어 님의 낯에 비추고자

(달이 되서 그녀의 얼굴에 비치고 싶다)

바위 위에 오동 되어 님의 무릎 베고자

빈산에 잘새 되어 북창(北窓)에 가 울고자

지붕 위 아침 햇살에 제비 되어 날고지고

옥창(玉窓)의 앵두화에 나비 되어 날고지고

(오동, 잘새, 제비, 나비라도 되어서라도 그녀 곁에 있고 싶다)

태산이 평지 되도록 금강이 다 마르도록

(산이 평지가 되고, 강이 다 말라도)

평생 슬픈 회포 어디에 견주리오

(평생 이렇게 슬픈 마음 어디에 비할까)

[작자 미상, ‘춘면곡(春眠曲)’]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노래다. 모르는 단어와 표현법은 주제를 파악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글에 대해 ‘<보기>를 참고하여 [A]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이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보기 지문에는 화자의 소망을 강조하기 위한 관습적인 표현으로 등장하는 자연물에 관한 내용이 정리됐다. 다음은 보기.

① 관습적인 표현을 활용한 것은 개인적 정서를 보편적인 것으로 느끼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겠어.

② 비슷한 의미 구조를 지니는 구절을 거듭 제시함으로써 화자의 소망이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어.

③ ‘오동’, ‘제비’, ‘나비’ 등이 사용된 데서, 인간과 자연 이 관련되어 있다는 화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어.

④ ‘조각달’이나 ‘잘새’ 같은 소재에는 ‘님’과 함께 크고 넓은 세계로 도약하려는 화자의 희망이 담겨 있어.

⑤ 자연물로 변해서라도 ‘님’과 만나려 하는 것을 보니 화 자가 ‘님’과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어.

운문을 제대로 읽었다면 보기만으로도 정답을 맞힐 수 있었겠다. 정답은 ④번이다. 스스로 유추하며 글을 읽어내 정답을 맞혔다면 다음으로 자신이 한 해석이 맞는지 정확한 현대어 풀이를 참고해 한 번 더 정리하자.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