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늘고 어려운 학생들 희망도 커졌으면…”

입력 2009-07-17 02:56수정 2009-09-2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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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고려대에 이공계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현금 10억 원을 기부한 이명교 옹(가운데)이 고려대 학생들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접어야 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대학 시절 학업에 전념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우정열 기자
실향민 이명교 씨 高大에 10억
“이공계 인재육성에 쓰이길”

“장차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는 데 내가 낸 장학금이 쓰이길 바랍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쓸모 있는 인재로 인정받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면 남은 생애에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16일 고려대 총장실에서 열린 장학금 기부식에서 이기수 총장에게 현금 10억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이명교 옹(78)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불편한 몸인데도 또렷한 음성으로 기부의 변을 밝혔다. 개인 기부자가 약정이나 분납이 아니라 10억 원을 한번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옹이 거액을 쾌척한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배움을 중단해야만 했던 자신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31년 개성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 옹은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정형편이 기울면서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1948년 개성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어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내려왔지만 변변한 일자리, 농사지을 땅 한 뼘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같은 해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

“입대 후에도 어떻게든 배움을 이어가려고 근무를 마친 저녁시간에 독학으로 영어,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 전쟁이 나고 국군 제1사단 등에 소속돼 전장에 배치되면서 공부와는 다시 멀어졌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갑종간부후보생’을 거쳐 중위로 직업군인의 길을 걷던 이 옹은 서른 살 되던 해에 군복을 벗었다. ‘중앙상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방직공장에서 구입해 온 면직류를 파는 일을 했다. 나라 전체가 헐벗었던 시기에 섬유 공급은 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장사가 번창했고 그때 그는 부의 기반을 다졌다. 사업이 잘되면서 경기 성남시에 ‘합동섬유주식회사’라는 섬유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

“장학재단을 만들까 생각했지만 제 자식 3명 중 2명이나 이공계 박사가 될 수 있게끔 키워준 고려대에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장학금 기부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1978년 고려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장녀 선경 씨(50)는 현재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로, 1980년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장남 동호 씨(48)는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는 올해 2학기부터 10억 원 중 우선 4000만 원을 자연계 학부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신부전증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매주 3회씩 혈액투석을 받는다는 이 옹은 최근 다리 신경에도 이상이 생기면서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하지만 “내 뒤를 이어 더 많은 분이 기부 대열에 동참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병색을 찾아볼 순 없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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