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먼저 갈 것 같아, 미안해… 아이들을 잘 부탁해”

  • 입력 2009년 7월 16일 02시 57분


새로 만든 서울∼춘천 고속道 현장점검 중 불의의 사고
박국장의 마지막 전화
박용교 서울국토관리청 국장
교통사고-통화 사연 관가 울려

“여보, 나 먼저 갈 것 같아. 미안해…. 아이들을 잘 부탁해.”

9일 오후 2시 40분경 어두운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박용교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서기관·52·사진)은 흉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부인에게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말했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월문3터널(서울기점 17.5km 지점) 바로 앞이었다. 비에 젖은 도로에서 박 국장이 운전하던 차량이 미끄러지며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터널 앞 전광판 기둥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머리와 가슴 부위에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다행히 의식은 남아 있었다. 그는 힘겹게 휴대전화를 꺼내 부인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경 박 국장은 준공(15일)을 앞둔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현장점검을 위해 서울을 출발했다. 각종 현안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지만 장대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렉스턴 차량 운전석에 오른 박 국장은 직원 1명과 함께 서울∼춘천 고속도로로 향했다. 이미 10여 일 전부터 2, 3일에 한 번꼴로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꼼꼼히 점검했지만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직접 확인하려 한 것이다. 박 국장은 세찬 비를 뚫고 춘천까지 달리며 폭우로 수몰된 곳은 없는지, 토사가 도로로 밀려 내려온 곳은 없는지, 각종 안전시설물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서울로 돌아오던 도중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사고 현장 근처에서 일하던 국토관리청 직원들의 긴급 연락으로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폭우 속에서 일그러진 차 안의 부상자를 밖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급대원들은 차량 뒷부분을 톱으로 뜯어내 간신히 그를 차 밖으로 끌어냈다. 박 국장은 즉각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그는 구급차에 함께 탄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아내와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사력을 다해 말했다. 함께 현장 점검에 나섰던 이주형 민자도로관리과 주무관은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부상이 심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자리를 옮긴 지 3개월도 안 돼 벌어진 사고였다. 4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박 국장은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용인∼서울 고속도로(1일 개통)도 함께 맡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거의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며 현장을 챙겼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해 현장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며 “그런 성실함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일찍 승진한 유능한 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국장과 부인의 마지막 통화는 관가(官街)에 널리 퍼졌고 많은 이가 그의 순직에 눈물을 흘렸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장례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도 11일 빈소를 찾아 대통령을 대신해 조문했다.

15일 서울∼춘천 고속도로 준공식에 참석한 국토부 공무원들은 박 국장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준공식 치사 도중 “현장점검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박용교 국장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도 “열심히 일하다 불행한 사고가 생겨 안타깝다”며 “다시 한 번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유족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1980년 교통부 항공건설사무소 토목기사보(8급)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남궁순자 씨(49)와 딸 상원(26), 윤정(23) 씨가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박 국장을 부이사관으로 승진 추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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