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붙이고… 입으로 물고 “마우스 하나로 세계 누비죠”

  • 입력 2009년 6월 25일 02시 56분


■ 2009 IT챌린지 ‘장애 청소년들의 당찬 도전’

치열한 예선 뚫은 260여명, IT전문가 꿈 키우며 구슬 땀

열여덟 살 조호준 군의 가방에는 항상 작은 마우스가 들어있다. 호준 군의 유난히 작은 손에 꼭 맞는 특별한 마우스다. 온몸의 근육이 약해 의자에 앉기도 어렵지만 마우스만 손에 쥐면 겁날 게 없다.

“이 몸으로는 집 밖을 나서기도 힘들지만 마우스 하나면 세계를 누빌 수 있잖아요.”

호준 군은 23일부터 이틀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치러진 ‘2009 SK텔레콤 장애청소년 IT챌린지’에 출전했다. 23일에는 파워포인트와 엑셀을 이용해 문제를 푸는 ‘e-tool 챌린지’와 온라인게임 대결을 펼치는 ‘e-sports 챌린지’에, 24일에는 인터넷 정보검색 대회인 ‘e-life’ 대회에 참가했다.

경기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매만졌다. 곧이어 호준 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게임은 그냥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둔 거고요, 진짜 본 경기는 파워포인트 대회예요.” 호준군은 당당히 ‘e-tool’ 부문 3등상을 거머쥐었다.

호준 군은 선천성 근이영양증 중에서도 진행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메로신음성형 선천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열여덟 나이에 겨우 몸무게 20kg을 넘겼다. 한창 바깥을 누비고 싶을 나이지만 대개 누워서 하루를 보낸다. 컴퓨터도 비스듬히 눕거나 앉아서 하는 게 익숙해 이번 대회에서도 의자 대신 바닥에 앉았다. 어머니 박영애 씨(44)는 자꾸만 손을 만지작거리며 호준 군 곁을 지켰다.

호준 군의 꿈은 이미지 디자이너. 3D그래픽 기술을 배워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다.

왜소증을 앓고 있는 공대헌(16) 소현(15) 남매도 나란히 경기에 참가했다. 자기를 ‘땅꼬맹이’라고 소개한 소현 양은 파워포인트 과제 다섯 문제를 다 풀고도 “시험을 잘 못 치른 것 같다”며 얄밉게 웃었다.

“저보다도요, 오빠가 우승하는 게 더 기쁠 것 같아요.”

소현 양의 바람대로 대헌군은 정보검색 대회에서 3등에 입상했다. 오빠가 자랑스러운 소현이는 오빠보다 더 크게 웃었다. 대헌 군은 “한 대뿐인 컴퓨터를 놓고 다투기도 하지만 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고 한다.

호준 군과 대헌 소현 남매 외에도 260여 명의 장애 청소년들이 치열한 예선을 뚫고 본선 경기를 치렀다. 예선에 참여한 학생만 2600여 명. 지역에서 1, 2등에 입상한 참가자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체장애로 손발을 움직이기 힘든 이학수 군(16)은 특수 제작된 헤드마우스를 이용해 경기에 참가했다. 코끝에 새끼손톱만 한 동그란 스티커를 붙이고 코를 움직이면 화면의 커서도 따라 움직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학수 군은 최대한 집중해 과제를 풀어나갔다.

한 무리 학생들은 아예 모니터를 돌려놓고 경기를 했다. 시각장애 청소년들은 모니터가 뒤집어져 있어도 문제없었다. ‘스크린리더’라는 헤드폰으로 화면의 커서가 가리키는 것을 소리로 듣고 컴퓨터를 조작했다. 스크린리더 개발자로 이번 대회 기술 지원에 나선 김혜일 씨(29)는 2003년 이 대회 금상을 수상한 선배다.

김 씨처럼 이날 대회에 참여한 장애 청소년들도 장애를 극복하고 IT로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꿈을 키웠다. 정보검색 부문에서 1등을 수상한 황경민 군(18)은 지체장애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지만 “내가 가진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내년에 다른 부문에서 1등을 노리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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