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세월을 뛰어넘은 감사패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전남 신안군 하의3도 농민들의 농지탈환운동을 처음 세상에 알린 1924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 24일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는 “동아일보 보도가 땅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85년 만에 보은의 뜻을 담은 감사패를 동아일보사에 전달했다.
전남 신안군 하의3도 농민들의 농지탈환운동을 처음 세상에 알린 1924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 24일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는 “동아일보 보도가 땅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85년 만에 보은의 뜻을 담은 감사패를 동아일보사에 전달했다.
24일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개관식이 전남 신안군 하의면 옛 하의북초등학교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기념관은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등 하의3도 농민들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300여 년 동안 벌여온 농지탈환운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하의도=박영철 기자
24일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개관식이 전남 신안군 하의면 옛 하의북초등학교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기념관은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등 하의3도 농민들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300여 년 동안 벌여온 농지탈환운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하의도=박영철 기자
신안 하의도 주민들 “항일 농지탈환운동, 1924년 동아일보 첫 보도로 승리 발판”

어제 기념관 문열어

1924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에는 ‘기구(崎嶇)한 운명(運命)에 번롱(飜弄)되는 만여(萬餘)의 도민(島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농민들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300여 년 동안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장문의 기사였다. 서남해 외딴 섬인 하의도의 농지탈환운동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이 기사의 반향은 컸다. 각계각층의 격려가 이어져 농민들은 큰 힘을 얻었다. 당시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한 생존권 투쟁은 항일농민운동으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됐다.

하의도는 17세기 조선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세도가가 농민들이 개간한 토지를 강탈한 후 땅 주인이 9번이나 바뀌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1914년 2월 20일 일본인 재벌 우콘 곤자에몬(右近權左衛門)이 강압적으로 땅을 빼앗으려 하자 농민 1000여 명이 목포재판소와 경찰서가 있는 해변에 솥을 걸어 놓고 농성을 벌이며 항거했다. 이때 수백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하의도 농민의 목숨을 건 농지탈환 역사를 보여주는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이 24일 문을 열었다. 하의3도는 하의도와 인근 상태도, 하태도를 이른다. 농민운동기념관은 신안군이 총사업비 29억 원을 들여 하의면 대리 옛 하의초교 대광분교 자리에 개관했다. 612m² 규모의 1층 건물로 종합안내센터, 정보검색실, 토지항쟁기념실, 농경문화실 등을 갖췄다. 토지항쟁기념실은 ‘역사의 땅’ ‘항쟁의 땅’ ‘평화의 땅’ 등 세 구역으로 나눠 토지항쟁 역사를 보여준다. 기념관 앞에는 8m 높이의 농민운동기념탑과 빼앗긴 농지를 333년 만에 찾은 것을 기념하는 최하림 시인의 시비(詩碑)도 건립됐다.

이날 개관식에서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는 85년 전 농지탈환운동을 최초로 보도한 동아일보사에 하의도 주민들의 보은의 뜻을 담은 감사패를 전달했다. 동아일보가 1924∼1928년 19차례에 걸쳐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을 상세히 보도함으로써 당시 일본인 지주와 일본 경찰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하의도 농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는 의미에서다. 김학윤 기념사업회장(73)은 “동아일보 보도가 아니었으면 300년이 넘는 투쟁의 역사는 일반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도 이후 신분과 민족을 초월해 유배지의 학자들과 일본의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에 나서는 등 땅을 되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개관식 행사에는 하의도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와 박준영 전남지사, 민주당 박지원 의원, 박우량 신안군수와 군민, 하의3도 농민운동 유공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14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하의3도 농민들의 토지탈환운동은 지주들을 상대로 한 소작쟁의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300년이 넘게 선조들이 개간한 땅을 되찾기 위한 의로운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하의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