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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9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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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유명 대기업 계열의 통신회사 면접을 봤습니다. 5명의 지원자들이 있었는데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소개를 한 친구가 '저는 합격만 시켜주시면 제가 지원한 분야가 아닌 분야의 일을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거에요. 저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한양대 4학년 오모 씨)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대학생들의 취업 눈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 회사나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과 금융권 등의 취업을 포기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진출 희망자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취업사이트인 '사람인'이 지난달 말 전국의 대학 4학년 학생 699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금융권'과 '대기업' 취업 희망자가 각각 33.1%와 50.4%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뒤에는 각각 22.3%(금융권)와 37.4%(대기업)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7.2%에서 27.3%로 크게 증가했다.
김홍식 '사람인' 리쿠르팅사업부 본부장은 "중학교 시절 외환위기를 본 세대라 경제위기와 취업난에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눈 낮추기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4학년이면 2002년에 주로 대학교에 입학한 이른바 '이해찬 세대'가 많다. 이해찬 세대들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한과목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며 1999년부터 자율학습폐지, 0교시 수업 폐지 등을 하는 바람에 학력 저하로 혼란스러웠던 2001년 수능 시험자들을 말한다.
올해 50여 곳의 기업에 지원했지만 아직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한 연세대 4학년인 홍 모(25) 씨는 "요즘 02학번들 사이에서는 '이해찬 세대=글로벌 금융위기 세대'라는 농담이 유행"이라며 "대학 입시 때도 힘들었는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는 것도 어렵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취업 목표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거나,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홍익대 4학년 정 모(25) 씨는 공무원 시험을 1년 넘게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계속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여부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그는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을 외치는 상황에서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안정성과 편안한 근무환경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 같다"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02학번인 한 모(25) 씨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상태에서 휴학을 결정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지금까지 진로 수정만 세 번째다. 한 씨는 제대 직후에는 공기업을 희망했지만 그 뒤 공무원 시험을 1년 정도 준비했고, 이제는 일반 기업체에 도전할 예정이다.
그는 "취업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솔직히 어느 곳에 들어가야 나에게 적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