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공개”… 감사내용 보고한 사무총장 “안된다”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2시 56분


2007.6.20. 대통령에 직불금 보고

2007.7.26. 감사원, 공개 않기로

한달 사이 무슨 일이?

원장 의견 묵살 이례적… 사무총장 “보완대책 먼저였다”

감사 공개제도 실시한 2003년 이후 유일한 비공개 결정

감사원이 쌀 직불금 감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사 진행상황을 보고한 지난해 6월 20일로부터 한 달가량 후인 7월 26일 감사위원 회의에서였다.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확정하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감사 진행상황을 따로 보고했다는 것은 감사원이 이 사안의 파괴력을 그만큼 중대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감사원이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선 석연치 않은 대목이 곳곳에 드러난다.

▽감사 중에 대통령에게 직보한 감사원=감사원은 2007년 6월 20일 농정 관계장관 회의에서 1시간 30분 동안 노 대통령에게 감사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보고는 쌀 직불금 문제에 집중됐다. 김조원 감사원 사무총장이 10분가량 보고하고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홍수 장관이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내용”이라며 안이하게 대처하자 “내가 지금 말년이라고 개기는 것이냐”면서 크게 화를 냈다고 당시 회의에 배석한 이상욱 감사관(4급)이 전했다. 그해 8월 박 장관은 전격 교체됐다.

이날 회의 분위기로 살펴볼 때 노 대통령은 이미 직불금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통령선거를 불과 반년 앞둔 임기 말이라는 점에서 4만여 명의 공무원과 가족들이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다는 민감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작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이날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6·20 회의에 배석했던 사람에게 들었다며 “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깜짝 놀라서 ‘이런 내용을 국민이 알게 되면 폭동이 나겠구먼’이라고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로 농민들의 시위가 거세던 때였다. 만약 그때 쌀 직불금 문제가 공개됐더라면 민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위원 회의에서 그런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비공개 결정=이로부터 한 달여 뒤인 7월 26일 열린 감사위원 회의 주요 안건은 쌀 직불금 감사결과였다. 대부분의 감사결과가 회의 직후 바로 언론에 공개되고 이어 감사원 홈페이지에 올려진다. 하지만 이날 안건은 공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됐다. 감사원이 감사결과 공개제도를 시행한 2003년 3월 이후 감사위원회 의결로 내린 첫 비공개 결정이다. 지금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감사위원들은 당시 회의에서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했던 것 같다.

합의체로 운영되는 감사위원 회의에선 주심이 회의를 진행하지만 감사원장의 뜻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전윤철 감사원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박종구 주심과 김조원 사무총장의 의견대로 결론이 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박 주심의 비공개 주장을 거든 김 사무총장은 직전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2005년 2월∼2006년 12월)을 지냈다.

박 주심은 “감사결과 공개로 인한 파장이 예상되는 데다 관행화된 직불금 문제를 보완대책 없이 공개할 경우 예상되는 우려를 감안해 비공개를 주장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장까지도 공개를 주장한 사안을 위원회에서 비공개로 결론 내린 데는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감사원장 대신 김 사무총장 등을 통해 비공개 의견을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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