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목 先이수제’ 찬밥 신세

  • 입력 2008년 6월 24일 03시 01분


고교생들 “대입혜택 없는데 뭐하러 강의 듣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이공계 인재 양성 등을 목표로 도입한 대학과목선이수제(UP·University-Level Program)가 본격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UP와 비슷한 AP 과목을 얼마나 많이 수강했느냐를 대입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 대학에선 입학한 뒤 학점으로만 인정하기 때문에 고교 수험생들이 외면하고 있다.

▽외면당하는 UP=수도권 A대의 이공계 교수단은 지난달 UP 운영 여부를 놓고 격론 끝에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A대는 지난해 겨울방학에 UP 강좌를 개설했다가 지원자가 없어 절반가량을 폐강하고 말았다.

교육당국은 지난해 7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UP 이수 학점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UP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방학에 UP 운영을 신청했던 16개 대학 중 4개 대학이 지원자 미달로 모든 강의를 폐강했고, 나머지 대학도 상당수 강의를 접어야 했다.

이런 사정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UP 운영을 주관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올해 여름방학 신청을 받은 결과 17개 대학만 신청했다. 특히 지난해 UP를 운영했던 대학 중 고려대 경희대 동아대 인천대 인하대 등 5곳은 아예 신청을 포기했다.

대교협 관계자는 “신청 대학의 강의 계획을 1차 심사한 결과 대부분 강의가 개설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원자 미달로 폐강되는 곳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입시 반영 안 돼 외면”=고교와 대학 관계자들은 UP가 외면당하는 첫 번째 이유로 ‘입시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교과부는 “UP 성적을 입시에 반영할 경우 이를 듣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이 성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입시 연계를 차단하고 있다.

UP 이수 성적은 7등급으로 매겨지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이수 여부(Pass 또는 Fail)로만 결과가 기재된다. 구체적인 성적은 대교협이 보관하다가 해당 학생이 대학에 들어간 뒤 요청하면 성적 증명서를 대학에 보내준다.

수험 준비에 쫓기는 학생들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 UP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2 겨울방학 때 1과목을 이수한 박모(18) 군은 “내심 입시에서 전형자료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며 “그러나 학점만 인정된다는 것을 알고 그 시간에 차라리 학원에 다닐 걸 하고 후회를 했다”고 말했다.

대학들도 UP가 입시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지방 B대는 UP를 개설할 예정이지만 강의는 대부분 강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지난해 강의한 교수들이 “입시에서 혜택을 줄 수 없어 우수 학생을 우리 대학에 데려올 수 없는데 뭐 하러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

수도권의 한 입학처장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됐으니 UP 이수자에게 가산점을 줄 수 있느냐는 학부모 문의가 많다”며 “수월성 교육을 위한 제도가 평등주의 때문에 되레 수월성 교육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고 각 대학의 UP 교육과정 및 평가방법이 표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시에 적용할 수 없다”는 방침만 고수하고 있다.

한편 대교협은 조만간 UP의 표준 교육과정과 평가방법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해 연내에 이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대학과목 선이수제(UP·University-Level Program)::

미국의 대학과목선이수제(AP·Advanced Placement)를 본뜬 것으로 고교생이 대학에서 개설한 수학 물리 화학 생물 강의를 미리 들으면 대학 입학 뒤 해당 과목의 학점을 이미 취득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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