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곤씨 “1억 받았지만 뇌물 아니다”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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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세청장 시절의 정상곤 씨2006년 7월 20일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부산 동래세무서를 방문해 부가가치세 전자신고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조세일보
부산국세청장 시절의 정상곤 씨
2006년 7월 20일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부산 동래세무서를 방문해 부가가치세 전자신고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조세일보
■ 돈 누구 줬기에… 사용처 함구 의혹 증폭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7일의 1차 공판에 이어 17일 본보 기자와 만나서도 건설업자 김상진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뇌물수수 혐의는 부인했다.

정 전 청장은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으면 성립하는 수뢰죄의 구성 요건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국세청 고위 간부이다. 부산지검이 지난달 10일 그를 구속하며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고 밝힌 점을 고려할 때 그의 모순된 주장의 배경에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1억 원 용처는 시한폭탄?=정 전 청장은 1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돈의 행방에 대해 “법정에서 할 얘기”라는 말만 몇 차례 되풀이했다.

최근에는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가 번복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그의 변호인도 한 기자에게 “뇌물의 용처가 드러나면 검찰의 처지가 곤란해진다. 이 돈은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라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고 한다.

정 전 청장은 검찰이 밝힌 혐의가 그대로 굳어질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최소한 징역형 5년 이상의 실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1억 원 중 일부가 다른 사람에게 건네진 사실이 밝혀지면 뇌물 액수가 1억 원 미만이 돼 재판부 감형으로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 전 청장이 1억 원의 용처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상황을 정 전 청장이 지난해 8월 세무조사가 한창일 때 돈을 받았다는 점과 연결시켜 보면 의혹은 더욱 커진다.

‘로비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 전 청장이 부하 직원에게 세무조사 중단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정 전 청장이 세무조사를 중단시키는 과정에 정 전 비서관 외에 또 다른 배후가 있을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한 대목이다.

▽용처 수사 제대로 될까=검찰은 정 전 비서관 수사에 대해서는 속도를 내 왔지만 1억 원 용처에 대해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31일 보완 수사를 재개한 뒤 13일이 지나서야 정 전 청장이 근무한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정 전 청장의 컴퓨터와 노트, 신용카드 전표를 확보해 뒤늦게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 전 비서관 수사에 집중해 온 상황을 고려할 때 일단 수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해명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용처 수사는 정 전 비서관 사법 처리 뒤가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정 전 청장이 받은 1억 원은 모두 1만 원권 현찰이었다. 그의 협조가 없거나 또 다른 단서가 포착되지 않으면 검찰 수사는 벽에 부닥칠 수도 있다.

부산=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수감 정상곤 前청장 면회 인터뷰▼

“이런 모습으로 낙마 죄송…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나”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17일 낮 12시 부산구치소 접견실에서 구속 이후 언론과는 처음으로 본보 기자와 만나 짧게 심경을 토로했다.

하늘색 수의(囚衣) 차림의 정 전 청장은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찾은 듯 10분간의 접견시간 동안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그러나 그는 건설업자 김상진 씨에게서 받은 1억 원의 사용처와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의 관련 여부에는 “법정에서 할 이야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7일 1차 공판 때 김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은 것은 인정했으나 뇌물수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 뒤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고 답했다.

돈을 받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자를 한동안 쳐다보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할 말이 없다. 내가 뭐라고 더 말을 하겠는가. 이런 모습으로 낙마해서 지인들에게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낙마’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구속된 뒤 혈압이 높아져 가족이 찾아와서 약을 전달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면회가 끝나기 직전 그에게 돈의 사용처를 다시 물어보았다. “구치소가 아니라 법정에서 할 이야기다”라는 답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에선 ‘뭔가 할 말은 있지만 묻어 둔다’는 듯 복잡한 기색이 잠시 스쳤다.

부산=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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