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킹콩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코멘트
《어마어마하게 큰 고릴라가 381m 높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가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킹콩’을 기억하시죠? 무시무시한 고릴라가 금발의 미녀와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진다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죠. 하지만 여러분, 아세요? 킹콩은 단순히 ‘괴수’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는 욕망 혹은 두려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1] 스토리라인

일확천금을 꿈꾸는 영화감독 칼 덴햄. 그는 여배우 앤 대로우, 시나리오 작가 잭 드리스콜과 함께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해골섬’을 향해 항해를 떠납니다. 미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기 위해서죠. 마침내 그들은 해골섬에 당도하지만, 원주민들에게 붙잡힌 앤은 해골섬에 사는 거대한 고릴라인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앤을 본 킹콩은 앤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품게 되고 잔혹한 공룡들에 맞서 앤을 지켜내죠. 하지만 성공에 눈이 먼 감독 덴햄은 앤을 미끼로 삼아 킹콩을 유인해 생포합니다. 미국 뉴욕으로 킹콩을 데려가 큰돈을 벌려고 하죠.

킹콩은 뉴욕의 극장을 빠져나와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천신만고 끝에 앤과 재회한 킹콩은 그녀를 데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전투기들의 공격에 맞서 앤을 지키려던 킹콩은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죠.

[2] 주제 및 키워드

영화의 주제는 물론 ‘사랑’입니다. 킹콩과 앤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니까 말이죠. 이 영화에는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더 강렬하고 낭만적인 앤의 표현이 있습니다. 그건 “아름답다(beautiful)”는 말이죠. 바로 이 영화의 키워드입니다.

‘킹콩’에는 결정적인 두 개의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골섬에서 앤과 킹콩이 석양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려 102층 높이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둘이 함께 태양을 쳐다보는 장면입니다. 일단 두 장면은 대조적입니다. 해골섬은 야생의 세계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인류문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알고 보면 두 장면은 완벽한 수미상응(首尾相應)을 이룹니다. 공간은 다르지만, 앤과 킹콩은 여전히 뭔가를 함께 바라보는 모습이니까 말이죠. 두 장면 모두에서 앤은 킹콩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아름답지? 그래, 아름다워….” 둘은 함께 아름다움을 교감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죠.

이런 뜻에서 볼 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킹콩의 사체를 보고 칼 덴햄이 던지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It was beauty killed the beast.”

여기서 ‘beauty’라는 명사는 두 개의 뜻으로 쓰이죠. 하나는 ‘아름다움’, 또 다른 하나는 ‘미인’이란 뜻입니다. 결국 이 대사는 일차적으론 “야수(킹콩)를 죽게 만든 건 미녀(앤)였어”라는 뜻이겠지만, 더 깊게는 “킹콩은 아름다움 때문에 죽었어”라는 해석도 가능하죠. 거친 야만의 삶을 살던 킹콩은 앤을 만나면서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되었고, 결국 그 대가로 죽음을 맞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 너무 슬퍼요.

[3] 생각 넓히기

거대 고릴라와 금발미녀의 사랑이라니,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상의 사건을 뚫고 들어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킹콩은 과연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고릴라에 불과한 걸까요?

생각해 보세요.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뉴욕입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뉴욕 증권시장의 주가대폭락을 계기로 해 1930년대에 엄습한 세계적 경제 불황)을 맞아 실업자들이 속출하고 생계형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회적 혼란과 불안이 가중될 때죠.

결국 정체불명의 괴수가 산업화의 상징인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인류문명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는 모습에서는 인간이 이룩한 (경제 시스템을 포함한)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공포감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킹콩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형상화된 존재였던 것이죠.

[4] 뒤집어 생각하기

궁금한 게 있습니다. 킹콩은 왜 앤을 해치지 않았던 걸까요? 킹콩은 자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여성들을 예외 없이 잔혹하게 죽였는데 말이죠.

그건 앤이 금발미녀였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앤을 보자마자 킹콩이 앤의 머리칼을 슬쩍 건드려 보는 장면에서 눈치 챌 수 있듯, 킹콩은 금발을 가진 앤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 이 감정은 사랑으로 깊어졌죠.

자,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불온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검은색’에다 ‘야만’의 상징인 킹콩이 ‘금빛 머리에 흰 피부’에다 ‘문명’의 상징인 앤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바로 이 장면은 흑인 노예가 자신의 ‘주인’인 백인 여성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듭니다. 얼핏 보면 야수와 미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검은색=야만적인 것=미천한 것=흑인’과 ‘흰색(밝은 색)=문명적인 것=아름다운 것=백인’이라는 이분법적이고도 차별적인 고정관념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죠.

만약 이런 분석에 여러분이 동의하기 어렵다면,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금발’에다 ‘흰’ 피부를 가진 킹콩이 곱슬머리의 ‘흑인’ 여성 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모습 말이죠. 당장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잖아요? 그만큼 우리 자신도 차별적인 시각에 익숙해 있는 거죠.

[5] 내 생각 말하기

킹콩은 그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칼 덴햄의 탐욕 때문에 희생됩니다. 하지만 만약 칼 덴햄이 ‘연구’와 ‘종(種) 보존’이라는 선의의 목적을 위해 킹콩을 생포해 왔다면 어땠을까요? 유일무이한 존재 킹콩을 발견한 뒤, 자연 그대로 잘 살도록 해골섬에 놔두는 게 옳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인류의 발견과 과학의 발전, 그리고 새로운 종의 보존을 위해 문명사회로 데려오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요?

둘 중 하나의 관점을 택한 뒤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참, 이번엔 온라인 강의를 꼭 참조해 주세요. 자신의 생각을 멋지게 표현한 분들에겐 깜짝 선물을 드립니다.

☞정답은 다음 온라인 강의에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