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태극기 휘날리며

  • 입력 2006년 8월 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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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슴 찡하면서도 엄청난 스펙터클을 보여준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다뤄볼까 해요. 아, 벌써 눈시울이 뜨거워지려고 해요. 그 대사만 생각하면…. “형, 일어나. 우리 가야 돼. 어서 가야 돼. 엄마한테 가야 될 거 아니야….” 하지만 여러분. 그냥 슬퍼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이 영화는 ‘개인과 사회’ 혹은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까 말이죠.》

[1] 스토리라인

때는 1950년 6월.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형 진태(장동건)는 집안의 희망인 동생 진석(원빈)이 대학에 가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굳게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형제의 운명은 소용돌이에 휩싸이죠. 군대에 강제 징집돼 끌려가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형 진태는 동생이 탄 군용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참혹한 전쟁터. 진태는 대대장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얘길 듣습니다. 그때부터 진태는 자신의 몸을 던져 전투마다 공을 세우며 전쟁영웅이 되죠. 하지만 동생은 잔인무도해지는 형의 모습을 원망합니다.

진석은 ‘빨갱이’ 혐의를 받는 형의 약혼녀 영신(이은주)을 구하려다 국군에게 체포되고, 국군에 의해 동생이 죽은 것으로 오해한 형은 인민군이 되어 이번엔 북한의 전쟁영웅이 됩니다. 형제는 다시 전쟁터에서 마주치고, 형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인민군을 향해 총구를 돌리다 안타깝게 숨집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영화의 키워드를 단 한 단어로 말한다면 ‘형제애’가 되겠죠. 방식은 달랐지만 형과 동생은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려 했으니까요. 또 전장에 내보낸 이들 형제를 기다리는 어머니, 그리고 진태의 약혼녀 영신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판단한다면 주제어는 ‘형제애’보다 약간 더 큰 개념인 ‘가족애’까지로 확장할 수 있겠죠.

혹시 듣기에도 멋들어진 단어인 ‘휴머니즘’ 같은 단어를 생각진 않나요? 근데 이 단어는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요. 동생 진석은 물론 휴머니즘의 수호자 같은 존재지만, 형 진태는 오직 동생을 살리기 위해 적군을 수없이 죽이잖아요?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해 휴머니즘이란 단어가 영화를 관통한다고 볼 수는 없죠.

이런 관점에서 영화에는 아주 중요한 상징물 하나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만년필입니다. 주제인 ‘형제애’를 결정적으로 상징하는 물건이죠. 당초 동생을 위해 형이 선물한 만년필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발견된 형의 유해 옆에 동생의 이름이 새겨진 이 만년필이 오롯이 간직되어 있는 마지막 장면은 시공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타내니까요.

게다가 ‘(잉크만 채우면) 만년 동안 계속 쓸 수 있는 연필’이라는 ‘만년필(萬年筆)’의 의미는 ‘영원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형제애’라는 주제와 절묘하게 겹쳐집니다.

[3] 생각 넓히기

영화 속에서 병사 영만(공형진)은 얼핏 보면 웃음을 선물해 주는 감초 같은 존재지만, 알고 보면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배고파 못 살겠다”는 푸념만 늘어놓는 그에게 동료 병사가 “너 이 새끼, 밥 한 그릇에 군복 바꿔 입겠다?”고 따지니까, 영만은 이렇게 말하죠.

“굶어 뒤지는 것보단 나은 거 아닌가? 막말로 이 놈의 전쟁 누가 이기든 무슨 대수야! 난 사상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형제들끼리 총질할 만큼 중요한 건가?”

여기서 서로 대척점에 있는 상대어 두 개가 있는데요. 바로 ‘군복’과 ‘밥’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의 의무를 상징하는 단어가 ‘군복’이라면, 군인을 떠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상징하는 단어가 ‘밥’이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영화는 이런 핵심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겁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생존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죠. 생각해 보세요. 국가 간 전쟁은 늘 어떤 그럴 듯한 명분 아래 시작되지만, 결국 모든 전쟁은 ‘개인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전쟁은 거창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종국적으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생존의 문제’로 귀결되니까 말이죠.

우리는 ‘개인과 국가’ 또는 ‘개인과 사회’가 어떤 권한과 의무를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사회 계약’이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서 도출되죠.

[4] 뒤집어 생각하기

이 영화에는 이른바 ‘역설(逆說)’ 혹은 ‘아이러니(irony)’가 등장해요(※역설=논리적으로 모순이지만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말).

형 진태를 보세요. 동생이 혹여 감기에라도 걸릴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형이지만, 적군은 파리 목숨 다루듯 마구 죽이잖아요? 형의 ‘형제애’가 깊어질수록 형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기계가 되어가는 거죠.

‘전쟁영웅’이라는 개념도 역설적입니다. 아군 입장에서는 ‘전쟁영웅’이지만 상대측 입장에서는 차가운 피가 흐르는 ‘살인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상대의 생명을 빼앗을수록 영웅이 되는 아이러니.

그래서 전쟁은 역설과 아이러니의 현장인지도 모릅니다. 형 진태는 오직 ‘형제애’라는 하나의 가치만을 위해 시종 몸을 던질 뿐인데, 그 결과는 국군의 영웅도 되었다가 다시 인민군의 영웅으로도 돌변하는 혼돈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5] 내 생각 말하기

오늘은 정말 간단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내드릴까 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태극기 휘날리며’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제목은 긍정적인 뜻으로도 부정적인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죠. 전쟁영웅이 된 형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백두산에 태극기 꽂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태극기를 꽂는다”는 형의 말은 물론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형 자신의 의지 표현이겠지만,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반어(反語)적인 속뜻을 갖고 있습니다(※반어=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 이 영화의 제목 속에 숨겨져 있는 함의(含意)를 파악해 보세요.

☞정답은 다음 온라인 강의에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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