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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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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의 역할 다시 깨닫게 한 사건
▽이 교수=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민족이나 나라가 적절한 시기에 겪는 불행은 역사의 과정을 새로 잡는 계기가 되는 예를 많이 봅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겪었던 언짢았던 사건이 많지만 2006년은 이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정신적 기반 위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해 봅니다.
▽김 교수=6·25전쟁 등을 겪으며 체득한 것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위한 싸움은 포기할 수 없고 포기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군인은 군인의 길로,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의 길로 그 싸움의 모양이 다를 뿐이지요.
▽이 교수=새해 새 출발을 위해서는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교수 사건을 짚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황 교수 한 사람만의 처신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 염원과 개인적 야심 때문에 정직의 중요성이 뒷전으로 밀리는 사회적 풍토, 권력과 돈에 학문마저 종속당하는 문제, 국민이 관여할 데 안 할 데 가리지 않고 여론몰이를 하는 세태 등이 쌓여서 나타난 겁니다. 적어도 지식인은 될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앞장서서 미신을 조장한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김 교수=사건 자체는 안타깝지만 결론적으로 잘됐어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논문 조작 조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은 오랜만에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멋지게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치부를 폭로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정능력을 보여주었거든요.
▽이 교수=오랫동안 정치가 교육을 도구로 이용해 온 결과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5공화국 때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생 수를 대폭 늘리고 대학교수를 갑자기 충원했지요. 그때 자질이 미흡한 사람들이 대거 교수가 되면서 교육이 30, 40년 뒤로 물러섰어요. 학자로서 진리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돈 버는 수단으로 교수직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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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과거에는 대학 입학시험이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었어요. 그런데 박정희 정권 때 대학생 모집권을 정부가 갖겠다고 대학 입시 예비고사제를 실시했습니다. 그 시절 진정한 야당은 학생이었으니, 학생을 잡겠다고 중앙정보부가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지요. 최근에는 개정 사립학교법이 논란이 되고 있어요. 종교계가 신앙에 입각해 사학법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사학법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 교수=제 생각은 다릅니다. 대학에 자율권을 주면서 비리 문제를 철저히 다뤄야지 사학법처럼 국가가 나서서 통제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교육 발전이 저해된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을 정략적 관점에서 다뤄 왔기 때문입니다. 자율권을 준 뒤 비리가 생기면 철저하게 처벌해야지, 새 사학법을 적용한다고 비리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 교수=공감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이 뽑은 현 정권이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워요. 사학법 문제도 공론의 장을 만들어서 충분한 토의를 거친 뒤 합의를 해야 하는데 민주사회,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는 정부의 방법론은 군사정권 때를 방불케 합니다.
▽이 교수=당사자들의 불만이 강하고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면 중대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사학비리가 반드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꼭 새 법으로 처리해야 할 중대한 국가적 사안일까요. 정치란 타협과 조화를 통해서 덜 못한 방향으로 현실을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일 텐데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식이 되는 듯해서 걱정스럽습니다.
○ 사실과 희망사항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김 교수=남북 문제도 우리가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 교수=통일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자세도 걱정입니다. 지난 60년간 분단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게 사실이지만 ‘고통의 원인이 분단이었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통일만 하면 고통이 해결된다’는 식의 단순 논리는 결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동족이 같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남북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이질성 극복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 없이 통일을 서두는 것은 위험합니다.
▽김 교수=잘 알려지지 않은 함석헌 선생 얘기를 하나 하죠. 함 선생 장남이 남긴 손자 넷이 이북에 있어요. 함 선생이 살아계실 때 이북의 손자 하나가 캐나다에 있는 함 선생 딸을 통해 “할아버지, 이북에 좀 오시라요”라는 편지를 보내왔어요. 가시려면 얼마든지 가실 수도 있는 분이었고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권운동가가 함 선생 아니십니까. 그런데 딱 자르고 안 가셨어요. 함 선생의 그런 자세를 이 정권이 북한을 대할 때도 참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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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아무리 민족 공조가 중요하다지만 자기 국민을 우선 챙겨야지요. 대다수 국민은 북한이 무너져 내리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걱정으로 햇볕정책에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상으로 돌아온 건 북핵입니다.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모든 문제는 접어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만 되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환상을 부추기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환상이요 위선입니다. 국민이 허술하게 그 함정에 빠져들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북관계에서도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을 제대로 보고 대비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저는 “기다리자”고 말하고 싶어요. 함 선생은 생전에 롱펠로의 ‘인생예찬(A Psalm of Life)’을 즐겨 외우셨죠. 마지막 두 구가 ‘Still achieving, still pursuing/Learn to labor and to wait’입니다. ‘끊임없이 이루어 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해 가면서/수고하고 기다림을 배우자’는 말씀이셨죠. 젊었을 때는 이 혼돈 속에서 기다리자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해에 대한 기다림을 품으면서 지금까지의 혼란을 승화시키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 교수=수고하자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노력과 대가 없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은 우리가 자정능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는 것 또한 확인했으니 이것이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빕니다.
정리=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김용준 교수
△1927년 충남 천안 출생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65년 미국 텍사스A&M대 대학원 이학박사 취득·고려대 화학공학과 교수 부임 △1975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해직(1979년 복직) △1980년 구국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해직(1984년 복직) △1993년 고려대 교수 정년퇴직, 고려대 명예교수 △1999년∼현재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 이인호 교수
△1936년 서울 출생 △1960년 미국 웰즐리대 사학과 졸업 △1967년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1972∼7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79∼95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1996∼98년 주핀란드 대사(최초 여성 대사) △1998∼2000년 주러시아 대사 △2000∼2003년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2004년∼현재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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