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대학가 '모자이크 시대']<中>'말짱'이 뜬다

  • 입력 2005년 11월 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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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강좌 열풍대학가에 ‘말짱’ 열풍이 불면서 말하기 관련 강좌가 수강 신청 시작 1, 2분 만에 모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성균관대 한 학생이 ‘스피치와 토론’ 시간에 농구공을 이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말하기 강좌 열풍
대학가에 ‘말짱’ 열풍이 불면서 말하기 관련 강좌가 수강 신청 시작 1, 2분 만에 모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성균관대 한 학생이 ‘스피치와 토론’ 시간에 농구공을 이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수선관 9층 ‘스피치와 토론’ 수업 강의실. 학생들이 자유로운 주제를 선택해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연습해 보는 발표력 수업이 한창이다.

첫 발표를 맡은 김성우(21·인문과학계열 1년) 씨는 ‘효과적인 여행 짐 싸기’란 주제로 발표를 준비했지만 앞줄에 앉은 학생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짐 싸는 법을 시연하다 강의 탁자의 분필통을 쏟아 강의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 글 쓰듯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을 듣고는 자신의 경험담까지 곁들이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최근 대학가에 ‘말짱’(말 잘하는 사람)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스피치학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말짱에게서 말 잘하는 비법을 전수 받는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성균관대 말짱 김성태(19·인문과학계열 1년) 씨의 인기는 선후배 구분이 없다. 김 씨와 함께 조를 짜 발표 수업을 하면 대부분 A학점을 받기 때문에 그와 친해지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이다. 김 씨는 최근 전국대학생토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과거의 달변가(達辯家)들이 일방적이고 호소적인 ‘설득’형이었다면 이들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반론을 펴며 유머러스한 ‘대화’형이라는 것이 차이점. 일단 말짱으로 인정받으면 동료 집단에서는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기 때문에 이들은 학교 주변 스피치학원이나 동아리 모임에 가입한다. 관련 동아리는 PC게임, 댄스에 이어 대학가 3대 동아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서울대 스피치커뮤니케이션 동아리 ‘다담’ 회장 양현모(24·인문대 2년) 씨는 “취업 면접, 발표 수업, 자신의 예술 세계 설명 등 나름대로 말 잘하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이라며 “조리 있는 설명, 재치 있는 표현, 간결하고 명확한 말하기가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말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각 대학도 관련 강좌를 개설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30명 정원인 25개 강좌의 정원을 각각 40명으로 늘리고도 추가로 인원을 받아야 했다. 연세대는 관련 강좌의 수강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 서강대와 성균관대 등 일부 대학은 아예 ‘말하기’ 강좌를 졸업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숙명여대 의사소통개발능력센터 신희선(申熙善·정치학) 교수는 “영상 매체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들은 생각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세대”라며 “인터넷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노출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학생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 ‘말 잘하기 열풍’ 배경

‘단절’과 ‘개인주의’로 대변되는 디지털세대가 최근 의사소통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를 학자들은 개개인의 재사회화(再社會化) 과정으로 설명한다.

고려대 현택수(玄宅洙·사회학) 교수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하고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되던 인터넷 공간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과 접하는 결과를 낳게 돼 보다 설득력 있는 대인커뮤니케이션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카페, 개인 홈페이지, 댓글 문화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진 대학생들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주목받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또 디지털세대는 개개인으로 세분화되고 파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또 다른 개인과 상호작용이라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존재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

나이 등을 바탕으로 한 수직적인 문화가 개인을 중시하는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말하기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대 김의철(金義徹·심리학) 교수는 “과거 수직적이고 간접적인 의견 표출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기표현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수평적이고 적극적인 표현 능력을 요구받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유정아(兪靜雅·정책학 박사과정) 강사는 “‘말짱’의 트렌드는 딱딱하고 모호한 주장이 아닌 유머러스하고 구체적인 실증주의적 설명”이라며 “선진국에서도 대학의 말하기 강좌가 이미 필수과목으로 개설되는 등 ‘말짱’ 열풍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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