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기장님, 뭐가 어쨌다고요?”

  • 입력 2005년 7월 20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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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나흘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 승무원이 노조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한 포털 사이트의 토론장에 올라온 이 글은 하루 만에 조회 16만건, 추천 2000건을 훌쩍 넘겼다.

자신을 ‘아시아나항공 10년차 캐빈(객실) 승무원’이라고 밝힌 ‘스테이션왜건’은 “기장님들 연봉의 1/4 수준인 저희들은 훨씬 힘들게 일하고 있다”며 “고액 소득자로서 그래도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분들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파업을 풀라”고 촉구했다.

그는 “기장님들의 연봉은 일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데다가, 별 노력 없이 잘난 노조를 방패삼아 매년 10% 가까이 더 받아간다”며 “외국인 기장들은 조종사로서 최소한의 PRIDE(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욕을 한다”고 말했다.

또 조종사들이 피로한 것은 비행 때문이 아니라 “해외 나가서 뙤약볕 아래서 골프를 너무 많이 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조종사들은) 영어 실력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며 “미국이나 영어권 나라의 관제탑에서 2류 조종사 취급을 받고 가끔 랜딩순서가 밀려 고객까지 골탕을 먹지 않느냐”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

‘은소저’는 “기장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 점점 깎이는 국가 이미지가 안타깝다”며 “자신의 이익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이익을 생각하는 책임있는 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명’은 “존경하는 기장님들 제발 정신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라”며 “지금 파업한다고 해서 동조할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중엔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익조’는 “다 해고시키고 외국 기장을 데려오면 된다”며 “국민을 볼모로 하는 파업은 그 댓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회사 측에서 언론플레이를 위해 올린거 아니냐”, “기장들은 돈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위해서 싸운다”, “무식한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승무원들 싸잡아 욕먹지 않을까 걱정 된다”고 반발 하기도 했다.

노조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글은 많은 부분 오해로 가득 차 있으며,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단순히 승무원 사회에서 돌고 도는 이야기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글 전문.

존경하는 기장님,

우선 제가 누군지 간략하게 밝힙니다.

저는 흔히 조종사라고 불리는 기장과 부조종사와 함께 기내에서 일하는 캐빈승무원입니다.

약 10년 가까이 근무했으며, 나름대로 성실히 노력하며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평달 월급 2백만원 안팎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봉급과 수당 받아가는 것에 경제적인 만족은 해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힘들게 근무하고 와서 잠을 청하려다 이것저것 조종사 파업때문에 고생을 더하고 나니 약이 올라서 잠이 안 오네요. 하고 싶은 말 좀 써야지 잠 좀 청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파업중인 기장님들 - 저희는 부조종사라 해도 '기장님'이라는 존칭을 항상 사용합니다 - 께서 이 글을 보시면 틀리면 틀리다 말씀해 주십시오. 전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이고 자신있습니다.

친하신 분들도 많은 데, 친분에 어울리지 않게 싸잡아 욕하는 자리가 되어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같이 사는 사회'인데 제 얘기도 들어주셔야 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혹 이글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께서도 제 글에 동조하신다면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하루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여론몰이라도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기장님,

기장님들께서는 업무가 고되다며 비행시간을 줄여달라고 하시죠?

대신에 지금만큼의 연봉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구요.....

아니오, 제 생각엔 절대 기장님의 노동은 힘든 노동 수준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기장님들은 8시간 이상 비행하시는 곳은 절반만 COCKPIT에서 근무하시고 절반은 최상위클래스에서 쉬시잖습니까? 저희는 14시간을 비행해도 2~3시간 밖에 못 쉬며, 그나마도 일반석이나 쪽방같은 벙커에서 겨우 쉬면서, 거의 대부분 앉지도 못하며 일합니다. 저희가 더 힘들게 일하는 건 아시죠?

설마 그냥 아랫것들이라 생각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절대 아니시죠?

존경받는 기장님들께서 설마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계시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장님들의 연봉의 1/4 수준인 저희들은 기장님께서도 인정하시다시피 훨씬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뿐만이 아니라 항공사에 근무하는 정비사님들 및 공항직원님들도 여러분보다 훨씬 힘든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의심스러우시면 같은 노조원이신 장XX 기장님께 물어보십시오. 그분 IMF때 부조종사로 임명 못 되어 공항에서 엄청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항공기 조종이 다른 일에 비해서도 그렇게 힘듭니까?

그리고 국내선 운항하시느라 여러번 이착륙으로 진짜 힘드신 기장님들,

원하시는 사항을 제대로 요구하십시오.

그렇게 힘드시면 비행시간 채워서 돈 벌 욕심을 줄이시면 됩니다.

저희처럼요. 저희는 돈보다 몸이 힘들어서 봉급줄어드는 것에 동의하며 조금만 비행합니다.

그래도 손해보기 싫으시면 차라리 봉급체계를 조정을 해달라고 하십시오.

큰 기종 탄다고 장거리 운항만 하면서 쉽게 일하시는 기장님들과 같은 비행시간 체계로 수당 받으시면 절대 공평해지지 못합니다.

노조에서 요구하는 대로 싸잡아 기본급 올려달라고 해봤자 상대적인 pay는 더 벌어지고 또 올려달라는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큰 기종 타시는 분들의 비합리적인 인상 요구에 그만 끌려다니시고 제 목소리 내십시오.

차라리 랜딩비를 대폭 인상해달라고 하시면 될 것을.......

물론 이건 제 짧은 소견이라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회사가 수긍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기장님,

기장님들 만큼 연봉받으시는 직종이 사회에 몇 종류 있습니다.

경영 컨설팅, 증권투자, 보험설계, 다단계판매, CEO, 변호사, 의사 등등...

이중에 기장님들의 2~3배 일하지 않는 분 있다고 생각되는 분 있으면 말씀해보십시오.

그런 분들에 비하면, 기장님들의 연봉은 일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그렇게 열심히 안 하면 도태되거나 많이 벌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장님들은 채용될 때 그 기준으로 별 노력없이 살아도, 그 잘난 노조 방패삼아 매년 10% 가까이 더 인상받아가십니다.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래도 더 벌고 싶으십니까?

혹시 정말 선민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시죠?

그렇다면 기장님들은 노블레스가 아니라 졸부입니다.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것 같고, 남을 위한 마음은 계속 적어지시구요. 졸부가 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왜냐구요? 그건 사회적으로 존경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왜 기장님들만 그렇게 많은 연봉을 주는 걸까요?

그건 기장님말씀처럼 안전운항을 책임지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존경심과 사랑에서 모두가 동의하여서 '우리는 조금 덜 받더라도 기장님들은 더 챙겨드리자'라는 무언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저를 비롯한 임직원 모두가 안전운항을 위해 노력하시는 기장님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이렇게 짓밟으면서까지 철없는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하필이면, 회사가 겨우 수익을 낼 수 있는 휴가철에 고객과 회사수익을 볼모삼아 그 많은 직원들에게 총뿌리를 겨누시는 것은 배신행위입니다.

아주 비열하고 이기적인 배신행위입니다.

기장님들의 요구는 애초부터 사회적인 책임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은 졸부의 치부수단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기장님들의 파업때문에, 기장님처럼 비행수당이 봉급의 절반인 저희 캐빈승무원들이 비행을 못해 봉급이 적어지는 것도 생각해주십시오.

같은 기내에서 일하고 마주치는 승무원으로서 미안해하셔야 합니다.

기장님들은 파업 종료 이후 보나마나 파업기간동안의 비행수당 및 봉급은 협상테이블로 끌고 와서 위로금같은 명목으로 보존해달라고 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저희는 그러지도 못하고 비행 못한 만큼 수당을 손해봅니다.

그러면 아마 억울해서라도 저희도 파업하고 싶어질겁니다.

기장님들 요구 들어준 회사에 대한 원망이 깊어져서라도 파업할 겁니다.

파업하면 되잖냐구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시아나항공은 분명히 파업때문에 고객신뢰도 떨어지고 수익도 줄어들겁니다.

더 나아가 아주 상황이 나빠지면 기장님들이나 저희들 모두 쪽박 찰테죠.

그나마 저희는 늘 대인관계를 잘해왔고, 또 봉급도 적은 편이어서 다른 곳에 취직되거나 강한 생활력으로 살아남겠죠.

그러나 아마도 회사가 망한다면, 기장님들은 분명히 대부분이 실업자가 될겁니다.

부조종사들은 기장이 아니라 외국 항공사에서도 안 써줄테고, 기장님들은 바늘구멍만큼 열려있는 기회를 잡으신 분 외에는 죄다 은퇴하시고 집에서 노셔야 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나항공을 구해줄거라구요?

그래도 기장님들은 너무 고액연봉들이시라 구조조정때 대부분 장외투쟁이나 하셔야 할겁니다.

이래도 이해못하시겠어요?

사회적인 책임도 모르는 무책임한 주장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리고 기장님, 덧붙여 말씀드리는데 제발 열심히 일 좀 하셔요.

외국인 기장님들이 욕합니다. 조종사로서 최소한의 PRIDE도 없는 사람들이라고요.

이륙과 동시에 거의 대부분의 기장님들께서 오토파일럿으로 변경해놓고 랜딩조차 오토로 하는 경우도 많으신 국내기장님들께서 뭐가 그렇게 고단하다고 하십니까?

그렇게 고단하다는 분들이 신문은 왜 종류별로 몇 부씩 들고 가십니까?

햇빛이 차단하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하십니까?

그리고 왜 꼭 스포츠신문이여야 합니까?

그렇게 힘드시면 해외 나가서 골프는 좀 자제하십시오.

골프때문에 피곤하시면 안전운항에 저해됩니다.

캐빈승무원들도 물론 골프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만, 기장님들처럼 열심히 치시는 분들은 없을겁니다.

가격 좀 싸다고 뙤약볕에 그렇게 골프치셔서 체력떨어뜨리면서 무슨 안전운항을 논할 자격이 있으십니까?

과장이 심했을 지 모르지만, 골프백 얘기는 다시 꺼내지 마십시오.

관제탑과 송수신하느라 바쁘시고, 고도 조정하느라 힘드시다구요?

그 정도는 저희도 인정하죠.

그러나 영어실력은 더 많이 쌓으셔야 합니다.

미국이나 영어권 나라의 관제탑에서 2류 조종사 취급받지 마시구요.

때문에 저희도 가끔 홀딩하거나 랜딩순서가 밀려서 고객까지 골탕먹잖습니까?

실력 안 되시는 분들은 외국나가서 골프치실 시간에 영어공부 한 자 더하십시오.

물론 잘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만한 연봉받으시려면 최소한의 자기 투자는 더 하십시오.

솔직히 심사에서 떨어지는 이유가 그 모자란 영어실력 때문인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생존에 위협되면 공부를 하십시오.

말같지도 않은 안전운항 핑계, 고객 볼모 만드시지 마시구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말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성실히 일하는 것 외에도 늘 공부하면서 살아간답니다.

재심사 탈락할 것이 두려우시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시고 노는 시간, 먹는 것 생각하는 시간, 집안일 생각 좀 줄이세요.

외국에 집도 사고, 아이들도 이중국적자로 키우고 유학시키는 것이 삶의 목표 전부가 아닙니다.

또 대부분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기장님들처럼 이런 지나친 요구들 안 하고 삽니다.

끝으로 아직 많은 기장님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근무하셨으며, 또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또 상급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계시는 그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 분들은 절대 윗글에 해당하시는 분들이 아니십니다.

오직 파업이라는 무책임한 칼부림을 하시는 분들만 윗글에 해당합니다.

고액 소득자로서, 그래도 사회지도층에 가까운 존경을 받는 분들로서,

건교부에서 관리하는 준공무원 수준의 직종에 일하시는 분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시고 이제 그만 파업 푸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 [도깨비뉴스] ‘승무원의 글, 늙은 조종사의 글’ 기사보기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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