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들’ 시니어클럽 택배업무 현장

  • 입력 2005년 6월 17일 03시 21분


코멘트
백구현 씨가 16일 오후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배달을 하고 있다. 백 씨는 “일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이라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백구현 씨가 16일 오후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배달을 하고 있다. 백 씨는 “일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이라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역시 노는 것은 직업이 될 수가 없더군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싫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종로시니어클럽 소속으로 3년째 택배 일을 하고 있는 백구현(67·서울 은평구 갈현동) 씨. 시니어클럽은 보건복지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만든 조직으로 현재 전국에서 30여 곳이 활동 중이다.

백 씨는 공무원으로 38년을 봉직하다 1998년 60세로 정년을 맞았다. 그의 마지막 직책은 경기도 K시청의 국장으로 지방 서기관이었다.

백 씨는 지금도 월 150만 원의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기 때문에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 1남 2녀의 자녀는 결혼해 독립해 나갔고 부인(64)과 단둘이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굳이 택배 일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나도 아직은 버려지지 않은 사회의 일원으로 내 용돈은 스스로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일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건강이 따라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장점이다.

16일 오전 9시 백 씨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대한성공회 대학로성당 내에 있는 종로시니어클럽에 출근했다. 이 클럽의 택배서비스 회원은 모두 26명으로 나이는 65세부터 76세까지. 백 씨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다. 이날 백 씨의 대기 순번은 6번. 이 순번은 전날의 마지막 호출 대기 순번에 이어 정해진다.

오전 9시 45분, 백 씨 차례에 해당하는 택배요청 전화가 왔다. 서울 성동구 성수1가에서 인천 부평까지의 택배 건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검은 작업모에 회색 작업복 면바지, 노란색 티셔츠 차림으로 어깨에는 작은 검은색 가죽 가방을 멨다. 가방에는 식수 안경 수첩 서울지하철노선도 인천직행전철시간표 남대문·동대문시장 가게 배치도 등이 꼼꼼히 정리되어 있었다.

인근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탄 백 씨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성수역에서 내렸다. 택배 요청을 한 곳은 소규모 구두 공장으로 부평까지 여성용 구두 한 켤레를 배달해 달라고 했다. 요금은 1만5000원.

65세 이상 노인들은 지하철 요금이 공짜이기 때문에 배달에 드는 비용은 거의 없고 택배요금은 전부 배달원이 가진다. 시니어클럽 사무실 운영비는 정부에서 나오기 때문. 백 씨의 경우 하루 보통 2, 3회의 배달을 담당해 하루 평균 2만 원을 번다. 한달 평균은 50만∼60만 원.

이날 그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왕십리역, 국철로 용산역, 다시 1호선으로 부평역, 다시 인천지하철로 부평시장역까지 가야 했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내렸다 탄 것을 포함해 모두 6번이나 전철을 갈아탄 것. 돌아오는 전철에서 백 씨는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 주고 노후를 나름대로 보람 있고 즐겁게 지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종로시니어클럽의 경우 고객이 늘어나면서 일거리가 많아지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배달원도 늘려야 하지만 쉽게 늘지 않는다. 희망자는 많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거나 자존심과 체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초기 단계에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일하는 것이 자부심을 느낄 일일지언정 얼굴 깎이는 일은 아니잖아요.” 백 씨의 생각이다. 백 씨는 “정부에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본인의 의지를 점검하고 자립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