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학교폭력 예방장치 법제화를

  • 입력 2005년 3월 1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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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은 ‘일진회’ 충격으로 시작되었다. 작년 이맘때는 교장 선생님의 죽음까지 빚어낸 ‘왕따 동영상 사건’이 있었다. 계속되는 주요 사회적 이슈로 학교폭력이 대두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1995년 동료의 따돌림에 못 이겨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두 달 연속으로 일어났던 그해부터였을까.

자녀가 안심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환경 만들기 운동이 전개되었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학교폭력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그런데도 새 학기 시작 때마다 늘 접하게 되는 학교폭력 문제. 이젠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졸속대책은 이제 그만 만들자. 학교폭력 문제는 지속적인 예방교육 없이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학교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학교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는 확고한 정책에 의해 학교폭력 예방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돼 실시된 지 30년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1964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정신건강에 관한 연설에서 “이제 미국은 예방을 국가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들어 미국은 주마다 자체적으로 학교폭력 예방 및 방지 대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학부모 교사 학교장 교육청까지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때 책임의 정도는 학교나 교육청 등이 얼마나 꾸준히 일관성 있게 예방 및 중재 교육을 실시해 왔느냐는 것과 직결된다.

영국도 토니 블레어 총리가 ‘따돌림 없는 학교 만들기’를 주요 선거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영국의 모든 학교는 학교폭력의 예방과 중재에 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법적인 의무로 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는 1985년 이지메를 당한 학생이 자살한 것을 계기로 문부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른 나라의 학교폭력 대처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려다 실패한 일본은 몇 년간에 걸친 전문가들의 연구 끝에 최근 ‘또래 지지(peer support)’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각급 학교에서 실시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이지메를 감소시키고 있다. 그 밖에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은 그 나라의 실정에 맞는 학교폭력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세워 시행하고 있다.

이제 학교폭력을 쉬쉬하면서 은폐할 시기는 지났다. 이미 발생한 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명백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은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형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에 따른 한국형 학교폭력 예방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실시가 필요하다. 단순히 폭력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갈등 상황에서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동 방식을 어릴 때부터 습득시켜 주는 교육이 학교 교과 과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바로 학교에서의 예방교육 실시를 정책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내년 봄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폭력 사건의 충격에 또 한번 경악할지도 모른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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