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성주]교육채권이라도 발행하자

  • 입력 2005년 1월 2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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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경제 활성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과 함께 양극화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및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더 이상 방치된다면 성장잠재력과 사회통합의 기반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사실 성장 및 분배 논란과 직결되는 양극화 이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부국과 빈국의 국가간 양극화, 도시와 농촌 및 중앙과 지방의 지역간 양극화, 서비스·제조업과 농업의 산업간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업간 양극화, 부유층과 빈곤층의 소득 계층간 양극화, 고학력과 저학력의 학력 양극화 등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능력 중시 사회의 ‘냉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쪽과 실패한 쪽 또는 1등과 2등 간의 보상에 격차가 점점 커지는 것도 시장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스포츠나 연예계 스타들의 예에서 보듯 능력의 작은 차가 엄청난 보상의 격차로 나타나는 ‘승자의 싹쓸이(winner-take-all)’ 현상은 이제 법률, 금융, 패션, 출판, 교육 등 어느 분야에서나 일반적이다.

▼학력 양극화, 국제경쟁력 약화▼

그런데 시장이 발전할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은 경쟁에서 실패한 쪽이 다음 기회를 위해 분발하기보다 아예 포기하는 상태가 될 정도로 격차가 커질 때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학력 세습에 의한 교육의 양극화는 사회적 이동을 막는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교육은 세대간 사회적 이동을 위한 핵심 원동력이며 지식기반 사회에서 소득 계층간 또는 지역간 양극화를 해소하는 시발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력 세습의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이며, 동시에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한 서구식 시장원리는 대학의 자율화와 경쟁을 촉진한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학생 개인의 부담을 키우고 경제력에 의한 학력 세습의 양극화 문제를 발생시켰다. 작년 4월 뉴욕타임스 보도와 같이 미국 부유층 자녀들이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점이나 지난해 우리 매스컴이 크게 다뤘던 부익부 빈익빈의 학력 세습 현상도 경제력에 의한 교육 양극화 문제가 세계적인 현상이며 점차 심각해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학력 세습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지원을 늘리고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율적인 시장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교육시장에서 이미 승자의 위치를 점한 선진 대학들과 경쟁하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일류 대학들은 기부문화에 힘입어 엄청난 기금을 축적했으며 학생 1인당 10배 이상의 교육비용을 투입한다. 인문 교육보다 2∼4배의 비용이 드는 이공계 교육의 경우 교육비용의 격차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소수라도 세계의 일류 대학을 따라잡으려면 국가의 획기적인 교육 투자 외에 다른 묘안이 없다.

▼정부주도 획기적 투자 있어야▼

싱가포르는 이런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불과 14년 전만 해도 경쟁력이 취약한 단 한 개의 국립대학밖에 없던 싱가포르가 세계적 교육 허브로 급상승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국가의 전폭적인 교육 투자와 과감한 시장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 데 있다. 즉 엄청난 투자를 통해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세계의 석학들을 교수로 유치해 국내 대학의 힘을 획기적으로 키우며 외국 대학들도 자국 무대로 불러들여 경쟁을 유도했다.

우리도 교육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국가 교육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교육시장을 개방하자.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대학을 키우자. 국가의 과감한 투자, 현명한 교육시장 개방, 그리고 철저한 평가와 보상시스템에 의한 내부 경쟁 도입,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동시에 교육의 양극화에서도 벗어나는 길이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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