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私교육]1부 사교육의 실체-③학원교육의 허실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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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사설학원에서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기사내용과 무관)-원대연기자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사설학원에서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기사내용과 무관)-원대연기자
《학부모 이모씨(42·서울 노원구 중계동)는 얼마 전 아들의 학습 상담을 위해 집 주변에 있는 한 과외방을 다녀와서 부부싸움을 벌여야 했다. 고교 1학년생 아들의 모의고사 성적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강사가 “사회탐구를 집중 공략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한 달에 100만원이나 하는 과목 수강 권유를 받아들였기 때문. 이씨는 “점수 시뮬레이션 과정을 볼 때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이 아닌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1부 사교육의 실체 ①불황은 없다
-1부 사교육의 실체-②치열한 생존경쟁

▽학원 수업의 허와 실=17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동 A학원 언어영역 시간.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강사의 과장된 자기과시성 발언이 이어졌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문제를 알아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00교육청에서 출제한 모의고사는 풀어볼 것도 없고….”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 대치동 C학원 영어 시간. 강사가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게 한 뒤 틀린 문제당 1대씩 손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강의는 기초원리에 대한 설명보다는 틀린 문제 풀기를 반복하고 풀이요령에 집중됐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응용문제가 나오면 또 틀리기 일쑤다. 서울 태릉고 이긍연 교사(41·영어)는 “접속사와 연결사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정답 찾는 요령만 배우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원 가면 성적 오른다?=학원에 다니면 무조건 성적이 오른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특히 강남지역의 일부 학원들은 배치고사를 통해 성적이 좋은 학생만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학생들은 그 시간에 스스로 공부해도 성적이 오른다는 것.

또 많은 학원들이 중간 및 기말고사 철이 되면 학교 교사들의 출제 경향을 분석해 정답 찾기 요령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학원에 다니면 성적이 오른다는 환상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윤지희 정책위원장은 “학교 수업이 학생들을 만족시키지 못해 학원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학원 강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개념이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학습 능력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원 강사=학원 강사들은 스스로를 ‘프로’라고 자부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매일매일 학생들에게 엄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

부산 동래구 D학원 수학강사 이모씨(35)는 “동료 강사들 앞에서 서로 강의를 하며 장단점을 지적받고 수업 외 시간 대부분을 연구에 투자한다”면서 “학생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강사로서 끝”이라고 말했다.

강사들은 대체로 두 가지 길을 밟는다. 변두리 소규모 학원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점차 대형 학원으로 옮기는 경우와 유명 강사의 ‘보조 강사’로 시작해 연구를 돕고 강의 테크닉을 전수받아 정식 강사가 되는 경우다.

고려학력평가연구소 유병화 실장은 “경쟁에서 탈락한 강사는 소규모 학원이나 지방 학원으로 내려가거나 중저가 과외시장으로 밀려난다”면서 “매년 10% 정도의 강사가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말했다.

▽강사들의 소득은 ‘하늘과 땅’ 차이=서울 강남에서 이름을 떨치는 한 강사는 한 달 수입이 1억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급 강사들은 2, 3명의 보조강사를 거느리지만 소규모 영세 학원의 강사는 한 달에 100만원을 받기도 빠듯하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학력과 경력을 과장하는 강사도 적지 않다. 명문대 야간대학원에 등록하고 출신 학과명도 없이 ‘OO대 출신’이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단 하루만 출연해도 ‘OO방송 강사’라는 ‘브랜드’를 붙인다.

수강생 수가 곧바로 ‘수익’인 학원과 강사들의 마케팅 전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강사들은 강의 실력은 물론이고 학부모를 설득하고 수강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을 고루 갖춰야 한다.

영어 전문 C학원 이모 강사는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과 대화하려면 최근 인기 있는 연예인 정보나 가요를 섭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체벌도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강남지역 E학원 원장은 입시설명회 때 대걸레 자루를 보여주면서 “자녀들을 확실하게 잡아줄 테니 믿고 맡겨 달라”고 공언해 학부모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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