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종묘 앞 세운4구역 논쟁 과열 사실무근 견강부회 자제해야

  • 동아일보

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의 고층 재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점점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종묘 경관 침해 논란이 정쟁화되는 등 논쟁의 과열 조짐이 뚜렷한 가운데, 사실이 아닌 내용에 근거한 주장도 오가고 있다.

11일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추진 중인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높이·경관 등 이미 촘촘하게 운영 중인 도시 관리 시스템에 ‘세계유산 반경 500m 이내 세계유산영향평가 의무화’를 획일적으로 추가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이중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6개 자치구, 38개 구역 정비사업 등 도시개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만드는 ‘강북 죽이기 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튿날 유산청은 반박에 나섰다. 개정안의 내용은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 사업, 사전 검토 절차 및 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것이고, ‘500m 이내 세계유산영향평가’라는 내용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산청은 “서울시가 ‘법적 절차 미비’ 등을 이유로 응하지 않고 있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입법예고 내용을 살펴보면 관련 내용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해외의 유사 입법 사례를 소개하면서 ‘프랑스는 역사기념물 주변 500m 내 건축 허가 시 국가가 공인한 건축 유산 및 경관 전문가(ABF)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소개했을 뿐이다.

서울시의 오해는 10일 허민 유산청장의 브리핑 가운데 ‘문화유산법에 따라 관련 고시를 검토한다’는 설명이 와전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산청 관계자는 해당 고시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유산이면서 세계유산인 대상에 한정하고, 또 그 가치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대규모’ 행위에 한정해, 500m 이내에선 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고시가 마련된다면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 수원화성 등 주변이 영향을 받게 된다.

견강부회식 주장도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일각에선 세운4구역에 들어설 고층빌딩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비견하기도 한다. ‘에펠탑도 건설 당시에는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됐다’는 식이다. 알다시피 파리는 강력한 도심 건물 높이 규제 등을 통해 6층가량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가득한 경관을 지켜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다. 파리 시민들은 1973년 완공된 높이 209m의 몽파르나스 타워를 아직도 미워한다.

‘누구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는 걸 그만두고 차분하게 문제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이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를 만들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조성’하는 세운지구 재개발에 약 1조5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절된 녹지를 잇는다는 데야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지만 그만한 돈을 투입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개발 이익이라곤 해도, 고층 개발은 도시의 밀집도를 더욱 높인다는 차원에선 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크건 작건 종묘 경관을 침해하면서, 기회가 한정된 도시의 공중 개발 카드까지 써 가며 1조5000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광화문에서#종묘#세운4구역#고층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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