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수수設 회오리]이광재 실장 시련의 계절

  • 입력 2003년 10월 7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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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386 최측근 참모로 꼽히는 이광재(李光宰)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이 시련에 처했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를 하는 데다 국정현안에 관한 각종 정보를 취합해 보고함으로써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잡고 있는 인물.

이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려왔고 이런 ‘꼬리표’ 때문에 언제나 몸을 낮춰왔으나 관광레저전문 S그룹 전 부회장 김성래(金成來·54·여)씨가 ‘수표를 줬다’고 밝힌 녹취록의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야당인 한나라당은 연일 그를 겨냥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6일 열린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기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압박을 가했고, 7일에도 박진(朴振) 대변인은 “이 사건이 제2의 안희정(安熙正) 염동연(廉東淵) 사건처럼 대충 미봉돼서는 안 된다”며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민주당도 이 실장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다. 김성순(金聖順) 대변인은 “검찰이 현 정부 실세에게 수천만원이 전달됐다는 녹취록을 확보하고도 상부에 보고는 물론 수사도 하지 않은 것은 축소수사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민주당 조순형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경제기자

청와대는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까지 나서 이 실장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있지만 내부 분위기를 보면 꼭 동정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새 정치를 하겠다는 386 참모답게 이 실장이 떳떳하게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국정상황실 직원들은 “새벽에 별보고 출근해 밤에 별보며 청와대를 나서는, 일만 하는 사람을 왜 자꾸 건드리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독주(獨走)를 경계하는 듯한 얘기는 청와대 밖에서도 들린다. 대통령과의 독대가 없어진 국가정보원의 한 간부는 “우리 정보가 그대로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적잖이 고쳐져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것 같다”면서 국정상황실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李실장 의혹 보도된 6일 저녁까지 기자접촉 끊어▼

김성래 전 S그룹 부회장의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된 6일 이광재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은 기자들과의 접촉을 하루 종일 끊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날 오전부터 국정상황실에 계속 연락을 취했으나 ‘회의 중’이라는 자동응답만 돌아왔고 휴대전화에 음성 메시지와 연락처를 남겨둬도 대답은 없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이 거듭 재촉하자 국정상황실 직원들은 “우리도 연락이 안돼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간 마감 시간을 눈앞에 둔 오후 4시30분경 홍보수석실의 한 행정관이 청와대 입장이라며 “(이 실장의 금품수수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도하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청와대 브리핑’에 입장을 자세하게 싣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대언론 소송 담당인 송경희(宋敬熙) 국내언론비서관에게 문의한 결과 “법적 대응에 관해 상의를 받은 적이 없다”며 “청와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예고와 달리 ‘청와대 브리핑’에도 이 실장 소식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오후 9시경 이 실장 자택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약속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이 실장은 7일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는 참석했으나 기자들의 전화는 끝내 받지 않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의혹 어떻게 불거졌나▼

이광재(李光宰)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의 금품 수수의혹 사건은 이 실장에게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S그룹 전 부회장 김성래(金成來·54·여)씨가 올 3월 S그룹 회장 문모씨(51)에 의해 사기혐의로 고소되면서 발단이 됐다.

김씨는 당시 S그룹 자회사가 경기 양평에 짓던 골프장 회원권을 담보로 농협에서 115억여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이사회 회의록 등 대출 관련 서류를 위조한 혐의로 5월 구속됐다.

이후 김씨는 반격에 나서 S그룹이 경기 동두천시장과 서울국세청 감사관 등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인 단서를 검찰에 제보했다.

이후 문씨는 관광지 개발 사업과 관련해 전 동두천 시장에게 3억원을 준 혐의 등으로 같은 달 구속된 뒤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갑자기 이 실장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것은 김씨가 문씨와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던 4월 김씨가 부하 직원들과 가진 대책회의 녹취록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부터. 녹취록에는 김씨가 “이광재? 이광재? 내가…자기앞…천만원…복사해놨어”라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검찰은 4월 김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이 녹취록을 확보했으나 김씨의 진술을 들어본 뒤 청탁 명목 등 범죄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하지 않았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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