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라이프]귀화한 프로축구 이성남 선수

  • 입력 2003년 10월 5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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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귀화한 프로축구단 성남 일화의 이성남 선수가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 이름이 새겨진 새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7월 귀화한 프로축구단 성남 일화의 이성남 선수가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 이름이 새겨진 새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3일 오후 4시 경기 용인시 이동면 천리 코스모화학연구소 운동장.

프로축구 K리그 3연패를 눈앞에 둔 성남 일화 선수들의 연습이 한창인 이곳에서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서툰 한국말이 귓전을 때렸다.

“도훈이 형(김도훈 선수), 패스!”

벽안에다 갈색 머리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형’이란 말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럴 때보면 영락없이 한국사람 같다니까.”

일화 차경복(車敬福) 감독의 말이다.

이성남(李城南·26) 선수. 우리에겐 러시아 용병 락티오노브 데니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7월 23일 한국 사람이 됐다. ‘왜 귀화했느냐’는 질문이 무색하게 그는 꽤 오래전부터 귀화를 준비했다. 오히려 ‘왜 귀화가 늦었느냐’는 질문이 옳을 정도다.

1995년 18세 때 한국으로 건너와 이듬해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에 선 그는 2000년부터 일찌감치 귀화를 희망했다. 문제는 국어와 국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귀화시험.

“세종대왕, 이순신, 유관순… 나 잘 모르겠어요.”

귀화시험의 단골 등장인물이지만 여전히 헷갈리고 어렵다고 했다. 올해는 3월부터 러시아어를 전공한 한국 대학생에게 매주 3차례씩 귀화시험을 위한 개인 교습까지 받았다.

당당히 합격증을 거머쥐었지만 점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100점 만점에 커트라인인 60점을 받았다.

귀화시험에 합격한 뒤 성남구단과 상의해 이름을 아예 ‘성남’으로 지었다. 성(姓)은 자신의 매니저인 이영중 이반스포츠 대표의 성에서 따왔다. 그러나 이 대표와 달리 그의 본관은 성남 이씨. 그는 성남 이씨의 1대조인 셈이다.

부모나 부인 등이 반대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대한민국은 제게 모든 것을 이뤄준 나라입니다. 한국에 와서 프로축구 선수가 됐고 실력을 인정받아 러시아 국가대표로도 뛰었습니다. 또 이곳에서 결혼해 아이도 둘이나 낳았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은 제게 기회의 땅인 셈이죠.”

그렇다면 그는 어느 정도 한국 사람이 됐을까.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하나, 둘, 셋…’하며 한국말로 숫자를 센다.

회복훈련의 하나로 펼쳐진 3인조 족구경기에서 토종팀이 용병팀에게 연달아 2세트를 내주고 무릎을 꿇자 한마디를 던졌다.

“태용이 형(신태용 선수), 화났어?”

그러나 훈련이 끝나고 다들 떼를 지어 이동하는데 그는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이날은 보신탕 회식이 있는 날. ‘귀화했으니 보신탕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달라진 것은 없어요.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에요.”

이성남이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귀화했으니 한국인과 똑같이 행동하라는 주변의 편견 또한 귀화한 외국인이 넘어야 할 장벽처럼 보였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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