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이인호/상식으로 돌아가자

  • 입력 2003년 7월 2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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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하도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 모두가 쇼크 면역증에 걸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약간 놀랐다가도 자기의 좁은 이해타산과 직접 관계가 없다면 곧 잊어버린다.

수억원의 뇌물을 받고도 ‘대가성’을 부정할 수 있는 기발한 법적 장치를 갖추고 있는 우리의 썩어 빠진 정치풍토는 아예 제쳐 놓자. 몇 년에 걸쳐 수백억원을 들여 거의 완성하다시피 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 교원노조가 학생들의 수업권까지 침해하며 결사반대 시위를 하는가 하면, 10년 가까이 조(兆) 단위의 혈세를 투입하며 추진해온 새만금 사업에는 뒤늦게 법원이 제동을 건다.

▼NEIS-새만금-북핵 ‘혼란의 시대'▼

그처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들이었다면 우리는 왜 일에 착수하기 전에 저지를 하지 못했던가. 인권침해나 환경파괴의 소지가 그처럼 크다면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는 어째서 말이 없는가. 정부가 수년간 추진해온 사업을 중단한다면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떤 형식으로 질 것이며 낭비된 시간과 돈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중도 포기 대신 보완책은 없는가.

북한에 대한 문제에는 아예 위기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고 온 세계가 떠들어도 가장 큰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는 태연하다. 불감증이 아니라 의식분열증에 걸린 것일까.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불온간행물과 화염병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학생 두 명이 구속된 반면 민노총은 그 인터넷 게시판에 김일성 찬양의 글과 음악이 올라와도 삭제하라는 경찰의 요청을 언론자유를 들어 거부했다는 기사가 보도된다.

같은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서도 호남 영남간 지역감정의 골을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정당 안에서도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마당에 반세기간 역사의 길을 달리해 온 북한과 우리가 민족공조와 동포애만 내세우면 모든 갈등과 이해상충이 눈 녹듯 사라지고 저들의 핵무기는 우리에게 위협 대신 힘이 될 것이라고 진정 믿는 사람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한 일이, 최근 우리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비의 경감을 위해 학교시설을 학원에 대여해 학교 안에서 특기나 입시과외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학부모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학교시설을 백분 활용한다는 생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학원이 학교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시설을 빌려주는 안을 교육부가 내놓는다니, 이것은 교육부 스스로가 학교교육의 파산을 선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학교는 졸업장이나 주면 되지 학생 개개인의 교육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 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믿는 것인가.

학교교육의 부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을 통해 시정하겠다는 의지와 종합적 구상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정책 실패의 틈새에서 교육활동을 영리추구의 수단으로 하며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기관인 학원들에 아예 학교 시설까지 제공하며 학교교육 보완을 요청한다면, 그것은 공교육 사교육의 이원화 구조를 아예 정착시키고 학교는 명분에나 매달리겠다는 이야기인가.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공교육 예산을 초과한 지가 오래이니 교육부나 교육위원회의 능력만으로는 국민의 폭발하는 교육수요와 구매력을 충족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양한, 좋은 사립학교들이 생기도록 장려함으로써 지금 조기유학이나 과외로 지출되는 돈과 에너지가 공교육 쪽으로 들어와 그 혜택이 장학제도 등을 통해 돈 없는 학생들에게도 미치고 부모와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수업을 따로 받는 이중부담에서 해방되도록 해 주는 것이 마땅치 않을까.

▼학원에 학교를 빌려주겠다니…▼

지금의 고액 과외나 학원수업 또는 조기유학에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전혀 끼어들 수가 없는 반면 민족사관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수학교 학생들은 학교교육만으로도 세계 명문대에 속속 진학하고 있다. 교육기회 불평등을 이유로 사립학교 육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참으로 상식이 그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전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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