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정도언/미인도 우등생도 '잠꾸러기'

  • 입력 2003년 7월 14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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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한민국의 거국적 행사인 수능시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험생이나 부모의 큰 관심 중 하나는 잠을 몇 시간 자면서 공부해야 대학입시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4당5락(四當五落·하루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입시전쟁은 치열하다. 과연 잠은 필요에 따라 얼마나 줄일 수 있으며, 얼마나 자야 건강에 지장이 없는 것일까.

결론은, 사람에 따라 수면을 취해야 하는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하루 30분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은 낮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이 많이 잔다고 따라 할 필요도 없지만, 적게 잔다고 따라 할 수도 없다. 무리해서 잠을 줄이는 것은 몸과 마음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가지고 장기간 잠을 설치는 것이 왜 불리한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잠을 줄이면 스스로 낮 시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미세수면이 발생해서 깜빡깜빡 졸게 된다. 그 순간 자습이나 강의에서 배우는 정보의 입력이 차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학습 결과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장기간 기억하기 위해서는 학습 후 깊은 잠을 자고 꿈을 꾸면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저녁까지 공부한 것을 장기기억으로 보관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덜 자고 더 많이 공부하겠다는 각오보다 오히려 충분한 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셋째, 잠이 부족하면 인지기능과 관련된 뇌의 구조와 기능이 위축된다는 보고가 있다. 구조가 위축된다는 말은 놀랍게도 뇌의 모양이 일부 변한다는 말이다.

넷째,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잠을 충분히 자야 성장호르몬(깊은 잠에서 분비됨)이 제대로 나오는데, 그러지 않으면 키가 덜 클 가능성이 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키가 큰다는 면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나온 연구결과에 의하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은 평균적으로 하루 1, 2시간씩 수면박탈 상태에 만성적으로 방치되어 있고, 그것이 지니는 건강상의 위험성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본다. 더군다나 정보기술 강국이 지니고 있는 함정도 추가적 부담이다. 대화, 게임, 정보검색과 같이 종래에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고 도서관을 여는 시간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집에서 24시간 내내 할 수 있게 되었다. 제 시간에 잠을 안 자거나 잠을 설칠 가능성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밤늦게까지 매달리는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은 특히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해롭다. 단순히 ‘공부를 안 한다’는 차원의 야단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이용한 설득을 통해 학생 스스로 잠을 조절할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가 도와 줘야 한다.

밤잠을 무리하게 줄이기보다는 낮 시간을 짜임새 있게 관리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 흥미롭게도 90분 정도 낮잠을 자서 깊은 잠과 꿈을 확보하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방학 동안에 이를 한번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

잠이라고 하는 생리현상은 무리하게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존경을 표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과 같다. 현명하게 대해야 보답을 받는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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