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시교육감도 '北퍼주기' 인가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8시 25분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이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해 1000여곳의 학교에 TV세트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다. 어려운 처지의 북한 청소년을 돕겠다는 의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방북한 시기는 북한 핵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국이 온통 뒤숭숭하던 때였다.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 다른 용처에 쓰이는 게 아닌지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웠던 시기였다.

교육자의 가장 큰 덕목은 정확한 판단이다. ‘교육공화국’ 서울시의 교육을 이끄는 최고책임자라면 더욱더 바깥 세상에 대해 깨어있는 의식을 지녀야 한다. 아무리 개인자격의 방문이었다지만 방북에 앞서 국민정서가 어떤지, 가야 할 시기와 장소인지를 면밀히 따져봤어야 했다. 민심의 방향과 동떨어진 그의 행동은 어설프고 신중치 못한 것이었고 이런 그를 놓고 시민들이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돌출 행동의 ‘서막(序幕)’에 불과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곧장 일선 학교에 TV세트 구입을 위한 모금을 지시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 형식으로 돈을 거둬 교육청에 입금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그가 북한에서 개인적으로 한 약속을 일선 학교와 학생들에게 떠넘긴 꼴이다. 이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발상도 문제지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지시가 일선 학교까지 곧바로 하달되는 서울시교육청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업무구조도 충격적이다.

더구나 불우이웃 돕기라는 명목은 그의 ‘상식’을 또 한번 의심하게 만든다. 북한을 돕는 것이 왜 불우이웃을 돕는 일이 되는지, 국내의 극빈 학생들은 또 어찌 되는 것인지 공교육의 또 다른 혼돈상을 보는 느낌이다.

교육자치가 강조되면서 교육감의 권한은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된다. 하지만 권한 남용과 비교육적 결정을 견제할 이렇다 할 감시기능이 없는 것은 현 제도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이런 교육자치를 그대로 놓아두고 공교육 개선을 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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