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아동 쉼터 '공부방'이 사라진다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41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달동네에 사는 조상우군(가명·11)은 요즘 학교가 끝나면 밤 9시까지 외롭게 단칸방을 지킨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상우는 저녁도 혼자 차려 먹는다. 그러나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보다 그냥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한 달 전만 해도 상우는 갈 곳이 있었다. 동네에 마련된 공부방인 ‘제기동 신나는 집’이 그곳. 숙제를 도와주는 선생님과 함께 놀 친구들이 있어 즐거웠다.

그러나 9월말 ‘제기동 신나는 집’이 문을 닫으면서 상우와 친구 15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인근 교회의 지원금과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99년부터 근근이 운영되던 이곳이 한 달 250만원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공단과 달동네의 저소득층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이 사회의 무관심으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종교단체나 독지가들이 지원하는 공부방은 전국에 200여개, 하루 이용자 수는 6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법적 근거나 제도적 지원이 없어 심각한 재정난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경기 평택시 신장2동 ‘송탄지역아동센터’도 유사한 경우. 1000만원이나 인상된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상근 교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뛰어다니고 있지만 돈을 마련할 길은 요원하다. 11월말까지 전세금을 못 구하면 청소년 30명은 또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경기 안산시 어린이청소년쉼터는 상근 교사가 올해 4명이나 바뀌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회복지사들이 의욕 있게 도전했다가 월 60여만원의 박봉과 과도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안산어린이청소년쉼터는 지난 2개월간 상근 교사 없이 파행운영되고 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李奉柱) 교수는 “공부방은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교육과 양육의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는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양성화해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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