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검찰총장 '千金의 침묵'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44분


‘수사 불간섭’ ‘유력인사와의 접촉 자제’ ‘무언(無言)의 메시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와 3남 홍걸(弘傑)씨에 대한 수사를 총지휘하는 이명재(李明載·사진) 검찰총장의 근황을 요약한 것이다.

이 총장은 홍걸씨가 서울지검에 소환되기 전날인 15일 낮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재단이사장인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요즘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건넸으나 이 총장은 빙긋이 웃으며 “재단을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동문서답’을 했다고 한다.

이 총장의 이날 집무 중 외출은 1월17일 취임 후 네 번째. 그는 취임 당시 “일체의 부당한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검찰권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고 밝힌 뒤 청와대 등 권력 핵심층과 접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석동현(石東炫) 대검 공보관은 말했다.

이 총장은 지금까지 집무 중 일본 법무상, 독일 법사위원장이 방한했을 때 대검 청사를 떠났을 뿐 점심식사도 매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나머지 한 번의 외출은 11일 홍업씨 비리를 수사 중인 중수부 수사팀과의 점심식사를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도 “연일 고생이 많다. 신문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어 수사팀과 통화를 하고 싶어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한다.

이 총장은 서울지검과 대검의 수사진행 상황을 보고받을 때에도 주로 듣기만 하고 별다른 지시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걸씨가 소환된 16일 이 총장을 만난 대검의 한 검사장은 “평소에도 말이 없는 분인데 요즘은 더욱 말이 없으니 갑갑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17일 석 공보관이 “외부에서 총장님의 근황을 자주 묻는다”고 말하자 “내가 나서서 뭐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 총장의 계속되는 침묵은 수사를 더욱 공정하고 철저하게 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