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 “인신구속 남발하며 정작 판결은 관대”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8시 16분


현직 판사가 “유죄판결을 받지도 않은 피고인에 대해 인신구속을 남발하면서 정작 판결은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현행 형사재판 관행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남근(尹南根) 서울지법 형사4단독 판사는 19일 대법원에서 열린 형사실무연구회에서 ‘불구속재판의 실천적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잘못된 구속 관행 때문에 적정한 양형이 선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판사는 “최근 영장실질심사가 정착되기는 했지만 피고인의 신병확보를 위한 절차적 수단에 불과한 구속을 범죄의 응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여전하다”며 “단지 범행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형벌부터 부과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횡포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윤 판사는 “잘못된 구속관행은 형사소송법의 근간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판중심주의 등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피고인의 충분한 자기방어 기회를 박탈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판사는 중형선고에 부담을 느껴 관대한 처벌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원의 보석 허가는 일종의 시혜처럼 여겨지지만 원래는 피고인의 당연한 권리이므로 판사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피고인의 경우 구속적부심과 보석 등을 통해 반드시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판사는 대신 징역 6월 이내의 단기실형 선고 등을 통해 형량의 적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5년 동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현행법상 아무리 단기라고 해도 실형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주장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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