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환자를 정신과 치료했다니"…피해 20여명 법적대응키로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2분


서울 강남구에 있는 A사 직원 20여명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회사에서 가까운 C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정신과 질환을 치료한 것처럼 보험급여를 청구했다. 이는 허위 청구인가, 아닌가.

A사 직원 정모씨는 10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인터넷 사이트(www.nhic.or.kr)의 ‘사이버 민원실’에 들어가 회사 인근 C의원에서 진료 받은 명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정씨는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이틀간 감기치료를 받았는데 공단측으로부터 “감기가 아니라 정신과 질환인 ‘적응장애’로 3일간 진료받은 것으로 돼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씨가 더 깜짝 놀란 이유는 회사 동료 23명도 같은 일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정씨의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이 ‘혹시나’하는 생각에 확인한 결과 C의원에서 감기치료를 받은 사람은 모두 정씨처럼 질병 이름이 ‘강박성 사고와 행위’나 ‘우울증’으로 바뀌어 있었고 진료 일수도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었다. A사 근처의 B사 직원 10명 중 5명도 마찬가지였다.

공단은 “C의원이 A사 직원 24명에 대해 정신과 질환을 진료한 것처럼 147건을 청구했는데 3200원인 본인 부담금을 9000∼1만원이나 받았으며 이 중 25건은 진료일수도 부풀려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C의원 원장은 감기 환자를 인격장애자로 둔갑시켰다는 공단측 발표에 “누군가의 음해”라며 펄쩍뛰었다. 원장은 “내과와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어 감기환자를 정신과적 치료법으로 빨리 낫게 만들었으며 (서류상) 정신과 의원으로 등록돼 있어 정신과 질환으로 보험급여를 청구했고 진료일수를 실제보다 늘린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사와 B사 직원들은 “단순한 감기 때문에 내과 간판을 보고 찾아갔는데 무슨 정신과적 치료냐”며 변호사를 선임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다. 공단은 이 의원의 최근 진료내용을 정밀 점검하고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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