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퇴출 발표]법정관리 요건 엄격해졌다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02분


채권단에 의해 퇴출되는 50여개 기업들이 법원에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를 신청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과거처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법원은 올 들어 법정관리의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고 법정관리중인 회사라도 회생가능성이 없을 경우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실제로 서울지법은 1일 법정관리 중이던 신화건설과 고려서적에 대해 법정관리절차 폐지결정을 내렸다. 또 지난달 9일에는 미주실업이 신청한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했다.

이같은 단호한 입장은 화의기업에 대한 연이은 퇴출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지법은 지난달 20일 화의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진종합건설 등 3개사에 대해 채권단이 낸 화의취소결정을 받아들였다. 서울지법은 8월 18일에 98년 화의법 개정이후 처음으로 동아지기인쇄공업에 대해 직권 파산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법원이 법정관리를 받아들이는 기준은 회사를 존속시켰을 때의 기업가치(존속가치)가 회사를 청산했을 때의 기업가치(청산가치)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

보다 근본적으로 파산부 판사들은 채권단도 포기할 정도로 다 죽어가는 회사를 법원이 장시간 관리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서울지법 양승태(梁承泰)수석부장판사는 “대부분의 회사가 워크아웃 등으로 시간을 끌고 상황이 극도로 악화돼야만 법원을 찾기 때문에 회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양부장판사는 또 “청산가치와 존속가치라는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건설회사처럼 청산할 재산이 별로 없는 기업들은 회생가능성이 없어도 법정관리를 받는 폐단이 있다”며 이부분에 대한 회사정리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기업 生死가를 기준은?▼

부실징후 대기업의 생(生)과 사(死)를 가른 것은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면 신규자금 지원 없이도 살 수 있는지 여부였다.

금융감독원은 당초 △향후 대출상환가능성까지 고려한 자산분류(FLC) 기준 ‘요주의’ 이하 △3년간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 △기타 은행들이 관리하고 있는 부실기업 등 3가지 기준(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은행들은 이런 기준과 성장성 부채비율 경영자자질 시장점유율 등을 감안한 판정기준을 마련했다. 이렇게 복잡하게 마련된 기준은 결국 은행의 추가부담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의 현금창출 능력이 있는가였던 셈이다.

동아건설이 회생과 퇴출의 저울질 끝에 결국 퇴출 쪽으로 결정된 것도 3406억원의 신규자금 요청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합과 조양상선의 회생결정에도 좋아진 유동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대건설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회생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올해 영업이익이 8000억원 이상이나 돼 기존 여신이 연장될 경우 이자 갚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평가 때문이다.

반면 쌍용양회가 3억5000만달러의 외자유치와 3000억원 출자전환 약속에도 불구하고 조건부 회생을 받은 것도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매출액 증가율이 10%를 밑도는 등 현금창출능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퇴출관련 용어풀이▼

부실기업 퇴출을 앞두고 법정관리 워크아웃 화의 청산 파산 등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다를까.

법정관리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화의는 부실한 기업을 살리는 데 목적을 둔 제도다. 반면 청산과 파산은 가망 없는 기업을 정리하는 절차.

법정관리는 파탄에 직면한 회사를 법원의 감독아래 채권자나 주주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회생시키는 제도. 화의 역시 법원인가를 받아야 하는 점에선 법정관리와 비슷하다. 워크아웃은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이 모여 만든 자율협약(기업구조조정협약)에 따라 출자전환, 원리금 상환유예, 신규자금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화의의 가장 큰 차이는 구속하는 채권의 범위다.

법정관리는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 채권 외에 물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등 일반 상거래채권까지 모두 묶여 가장 범위가 넓다. 화의는 담보 없는 채권만 행사할 수 없고 담보채권은 언제든지 “갚아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협약에 가입한 채권자만 구속, 유예대상 채권의 범위가 좁다.

법정관리와 화의는 각각 회사정리법, 화의법의 규정에 따라 정형화된 틀을 따르게 되지만 워크아웃은 법규정이 없는 것도 다른 점. 법정관리와 화의는 기존 경영권이 박탈되느냐, 유지되느냐에도 큰 차이가 있다.

한편 청산과 파산은 모두 기업을 ‘죽이는’ 과정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면 기업의 실체는 없어진다. ‘빚잔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청산은 상법, 파산은 파산법에 따른다.

청산은 기업이 모든 채무를 갚고 스스로 회사를 정리하는 것인 반면 파산은 자산에 비해 부채가 많은 경우 우선순위에 따라 채무를 변제하는 것. 법정관리 또는 화의기업이 정리될 경우 보통 파산절차를 밟게 된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비교
-워크아웃법정관리화의
대상/신청권자주식회사/당해기업 및 주관은행주식회사/당해기업, 채권자 및 주주개인 및 법인/채무자
유예대상 채권협약가입채권 전액상거래채권 포함한 모든 채권화의채권(무담보채권)
주주권리실사결과에 따라 감자 후 채권단 출자전환 실행2분의 1 이상 소각(특수관계인 소유주식의 3분의 2 이상 추가소각 가능)감자 등의 절차 없이 주주권리 유지
경영권협의회 결의로 구경영진의 경영권박탈 가능구경영진 경영권 소멸구경영진 경영권 유지
중요사항 결정채권금융기관 협의회 4분의 3 이상 결의로 결정채권액 4분의 3(무담보의 경우 3분의 2) 이상 결의로 결정 후 법원인가출석채권의 과반수 및 총채권액의 4분의 3 이상 결의
채권상환기간제한 없으나 대부분 5년최장 10년제한 없으나 법정관리 수준에서 결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