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관리, 시공은 번듯 관리는 엉망

  • 입력 2000년 7월 24일 18시 47분


지난해 10월 김모씨(35)는 서울시를 상대로 2000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97년 11월 서울 남부순환로에서 김씨의 승합차가 빗물이 고인 도로 웅덩이에 미끄러지면서 가로수와 충돌해 부상을 입은 것. 사고위험에 노출된 도로의 유지관리에 소홀한 행정당국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처럼 도로의 적절한 보수 및 유지관리는 안전운행과 직결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의 도로정책은 ‘시공’만 강조된 나머지 ‘유지관리’는 간과돼 왔다고 입을 모은다. 시공 뒤 의 ‘관리부재’로 인해 도로의 내구연한이 단축되면서 결국 안전운행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빈약한 도로 유지관리 환경을 지적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1100여km의 시도와 교량 및 고가차도 등 수 백여 개의 도로시설물을 관리하는 6개 도로관리사업소의 인력은 250여명. 8개의 대형 한강교량을 비롯해 시도 256km, 고가 및 지하차도 터널 등을 관리하는 동부사업소의 경우 담당직원은 43명에 불과하다. 특히 내부순환로 등 169km의 자동차 전용도로의 관리인원은 9명이 전부다.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잦은 인사까지 겹쳐 도로관리 분야의 전문인력 육성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관리정책으로 인해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예산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도로의 유지보수 비용은 1조3600여억원으로 85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시만 한 해 평균 2400억원 이상의 거금이 소요된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차량증가로 인해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감가상각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건설 위주의 땜질식 관리정책과 체계없는 관리업무가 빚은 ‘예산낭비’라고 지적한다.

도로관리정책의 최종 목표는 한정된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 양질의 포장도 및 내구도를 유지시켜 도로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 이를 위해선 각종 도로 관련 정보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8만6900여km에 이르는 전체 도로망 중 포장관리시스템(PMS:Pavement Management System), 교량관리시스템(BMS:Bridge Management System) 등이 구축된 구간은 1만4000여km의 일반국도와 고속국도 뿐이다.

나머지 교통량이 집중되는 특별시 광역시 도로나 지방도 시군도 등은 대부분 비전문가가 차량을 타고 육안으로 도로상태를 점검하는 실정. 반면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각종 첨단 컴퓨터장비를 탑재한 검사차량으로 매년 각 주별로 취합한 상세 도로의 교통량과 포장상태, 교량의 상태, 도로의 혼잡도, 교통사고 등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주요 정책결정에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같은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의 효과는 한 해 900억을 상회하던 포장보수비가 91년 PMS 도입 이후 연평균 600억 수준으로 줄어든 국내 일반국도의 관리실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결국 적은 비용으로 안전운행을 보장하는 최적의 도로상태 유지를 위해서는 적절한 관리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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