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자 노조가입 논란]법무부-노동부 입장

  • 입력 1998년 12월 9일 19시 42분


직업을 가졌다가 실직한 선원 건설일용직 등 이른바 ‘단속(斷續)적’ 실업자에 한해 노조가입을 허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작업이 정부내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4주째 표류하고 있다.

이번 논쟁은 ‘실직자 노조가입 허용이 노사정 합의사항이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이라는 노동부 주장과 ‘사회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법무부의 반대에서 비롯됐다.

노동부는 “실업자에게 웬 노조냐”는 세간의 의문을 막기 위해 용어도 ‘직종별 노조’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초기업단위 노조’라는 말 자체가 어렵고 ‘실직자의 노조가입 허용〓실직자 노조’라는 오해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왜 법개정 추진하나〓항운 선원 건설일용직처럼 성격상 근로관계가 지속적이지 않고 단속적인 경우 취업과 실업상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직종 근로자에게 일정한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기업형태를 벗어난 직종별 노조에도 실직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선원이 배를 타지 않을 때는 ‘실업상태’이지만 다시 배를 타면 노조원이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5천7백33개 노조 중 이런 종류의 노조가 1백48개(조합원 10만7천명)나 된다.

노동부는 가입범위를 △신규실업자가 아니라 전직실업자 △구직중인 단기실업자 △동종업종에 종사했던 근로자로 제한해 3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했다.

▼실직자도 근로자인가〓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직자도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고 보편적 국제기준이라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노조원으로서의 근로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는 실근로 종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고용되지 않은 실직자들의 ‘노동자단체’는 성립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은 곤란하다는 논리다.

▼실직자노조 가능한가〓법무부는 실직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할 경우 ‘실직자 노조’가 탄생해 강경투쟁을 일삼아 사회불안을 초래한다며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외국에도 실직자가 노조원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을 둔 나라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실직자만으로 구성된 단체는 교섭상대인 사용자가 없어 법률상 노조로는 인정할 수 없다며 그같은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하다는 입장. 또 실직자 개인도 조합원 자격은 있지만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은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만약 실직자 노조가 결성되더라도 규약에 ‘근로조건 유지 개선 등 지위향상을 위한 활동’이 포함되면 노조목적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설립 자체를 불인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행 노사협상체제 바뀌나〓법무부는 우리나라는 기업별 단위노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실직자들이 지역별 업종별 노조를 계속 설립할 경우 현행 기업별 단위노조 협상체제가 무너지고 산별노조 중심의 집단 협상이 일반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을 떠난 강성 인물들이 노조를 장악, 기업사정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를 통해 노사협상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법무부가 법개정 취지를 교묘히 악용하는 극단적 사례만을 상정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노조의 생리상 실직자가 주도권을 잡기가 힘든데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등 법제도를 통해 규율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없다는것.

설령 산업별 노조를 결성한다 해도 사용자단체가 협상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노조가 얻어낼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향후 전망〓이제는 법리논쟁 등의 차원을 넘어 실직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했을 때의 부작용과 허용하지 않았을 경우 노동계 반발로 내년 상반기까지 노사정위가 표류할 가능성 중 어느쪽을 택하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법개정 시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정기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고 논의는 내년 2월 임시국회 등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인철·부형권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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