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신문 동아일보]「독자기사평가」2개월 의견 봇물

  • 입력 1998년 7월 31일 11시 27분


“딸이 세계를 제패한 순간, 아버지가 달려나가 포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부정(父情)아니겠습니까.

기자님은 골프매너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지만 제가 만약 기자라면 ‘한국적인 부모의 모습’이라고 자랑스럽게 쓰겠습니다. 기자님같은 분들 때문에 우리 것을 잃고 무조건 외국의 기준만 우선시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박세리가 상대선수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고 부친과 먼저 포옹을 하는 바람에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다른 언론에선 열광적인 찬미 분위기에 휩싸여 못본채 지나갔는데 기자님만이 정확히 지적했더군요. 진정한 언론정신을 보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습니다.”

박세리 선수 부친의 행동을 ‘기자의 눈’에서 지적한 체육부의 한 기자. 쇄도하는 독자들의 전자우편(E메일)홍수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해야 했다.

기자 이름 뒤에 E메일 주소를 쓰기 시작한지 두달째인 7월. 기자들의 E메일 수신함은 그날 기사를 화두(話頭)로 한 독자들의 뜨거운 ‘찬반논쟁 모음집’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독자들은 성의없어 보이는 기사는 단 한건도 너그러이 봐주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짧은 기사여도 문의 전화번호는 써줘야 하는 것 아니냐”(실직 전산전문가를 모집하는 기업에 관한 기사), “왜 당신들 입맛대로 PC통신의 여론을 재단하느냐”(차범근감독 경질에 대한 기사).

준엄한 비판에는 연령구분도 없었다. 올해 19세라는 젊은 독자. ‘국민회의가 국회의장 선거에 대한 원칙을 잃고 있다’고 비판한 ‘기자의 눈’에 대해 “그렇다면 국민회의가 국민은 생각지말고 밀어붙이기만 하라는 거냐”며 현정국과 언론의 책임을 조목조목 따져 그 나이대의 자식을 둔 편집간부들의 종아리를 아프게 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삼성종합기술원의 한 박사는 3일자 경제면의 ‘탄소반도체 기술 무상양도’기사와 관련, 탄소반도체 개발의 역사와 실태를 설명해주며 “유명세 타기를 원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불순한 의도에 이용되지 말라”고 충고.

물론 메일의 상당수는 격려와 감사. 2면 날씨이야기 담당 기자들에겐 “기자님의 기사를 보면서 계절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느낀다” “짧은 글속에 메시지가 있고 상식까지 얻을수 있어 빼놓지 않고 스크랩한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물론 “요즘같이 기온 변화가 심하고 기상예측이 틀린 날이 많을 때에 한가하게 시나 시조가 나와 짜증난다”는 근엄한 비판도.

때론 ‘미스터리 극장’을 연상케하는 메일도. 태고종 충담스님이 소신공양(燒身供養)했다는 기사가 나간뒤 한 독자는 자신이 직접 소신공양 하는 꿈을 꾸었다며 “꿈이 너무도 생생해 이상하다. 그 스님에 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E메일의 익명성을 이용, ‘어려운 부탁’을 해오는 독자도. 17일자 국제면에 ‘첫 성경험 장면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는 기사가 나가자(며칠 후 사기극임이 판명돼 후속기사가 나감) “불순한 의도로 그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인터넷 주소를 쓰지 않은 기자님의 깊은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서두를 꺼낸 뒤 “그래도 나에게만 좀 개인적으로 알려달라”는 정중한, 때론 애교섞인, 때론 안 알려주면 사고치겠다는 위협섞인 요청이 쇄도. 그래서 과연 그 인터넷 주소를 알려줬을까?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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