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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25일 0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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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삐 손을 움직이다가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온다. 며칠을 미루다 오늘 너의 방을 정리했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너의 책들. 즐겨듣던 음악테이프들. 잠시 주인을 잃은 컴퓨터.
대건아.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바빠 부모노릇도 제대로 못했는데 잘 자라주어 정말 고맙다.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한파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네가 선뜻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한다고 했을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너의 그 깊은 마음이 그저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옛날에 말이다.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너의 아버지와 나는 너무 가난했다. 우리는 사랑 하나만 믿고 원주의 조그마한 산사에서 혼인의 예를 올렸단다. 한평의 월세방에서 너희 남매가 태어나고 한뼘씩 한뼘씩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살아왔지. 처음으로 중고 컬러 TV를 샀을 때의 그때 그 기쁨이란…. 지금도 가게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 TV를 엄마는 버릴 수가 없구나.
네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란다. 많이 달구고 많이 두드려야만 강한 쇠가 될 수 있듯이 지금 네가 힘들고 고달픈 것은 쓰임새가 많은 단단한 쇠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가정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지금의 군생활이 너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소금이 될 것이다. 절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노력 해야 한다.
어서 빨리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와서 씩씩한 국군장병이 되어 있을 잘생긴 너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환절기에 부디 몸건강하거라.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
이문옥(경기 연천군 청산면 초성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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