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참사]『잇단 화염-폭발…지옥따로 없었죠』

  • 입력 1997년 8월 15일 20시 22분


『눈을 뜨니까 주위는 아수라장이었고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기절한 듯 엎어져 있었어요. 옆좌석의 남동생을 찾았어요. 발이 보이길래 일으키려고 잡아 당겼더니 끔찍하게도 발만 쑥 빠져 나오…』 지난 6일 새벽 괌 아가냐공항 인근에 추락한 대한항공기 참사현장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생존자 중 한명인 10대 소녀가 병상에서 소곤거리듯 밝힌 이야기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저쪽을 보니까 벽이 갈라진 틈새로 훤한 불빛이 들어 왔어요. 그곳으로 걸어 나오자 미군이 보였어요. 「헬프 미(help me) 헬프 미」하고 소리쳤어요』 이 소녀는 그리고 나서 미군에게 『나를 꼭 껴안아 달라』고 여러차례 되뇌이듯 말했다고 한다. 지옥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스스로 믿어지지 않았고 몸서리쳐지는 공포를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 『잠시 후 내가 걸어 나왔던 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살아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어요. 아주머니는 미군을 보자 다급하게 「유(you) 컴백(come back) 「유 컴백」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군을 보는 순간 「아, 여기가 괌이지」하고 생각한 듯 이 여인은 「빨리 사고기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꺼내 달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 것. 『그 아주머니는 미군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가져와 맹뷸런스로 옮기려 하자 「나는 괜찮으니 사고기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달라」는 뜻으로 「노(no), 노우」라고 소리지르며 몸부림을 쳤어요』 그러는 사이 항공기 기름이 흘러나와 동강난 기체와 갈대밭을 함께 태우며 불길이 치솟았다가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면 주춤하는 아비규환의 장면이 반복됐다. 그리고 폭발음이 이어졌고…. 10대 소녀는 국내 병원으로 후송된 뒤 병상에서 만난 아버지에게 참사 직후의 현장을 이렇게 전하면서 『엄마하고 동생은 살아 있는 거지. 아빠, 우리 울지 말기로 하고 용기를 내』하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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