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동포근로자 2명의 「送年」『동료-회사 사랑 넘쳐요』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서울 구로공단 3단지 세일철강(사장 權台赫·권태혁·60)에서 공원으로 일하는 중국동포 李昌吉(이창길·36)씨와 尹東植(윤동식·28)씨에게 지난 1년은 어느때보다 바쁘고 보람찬 한해였다. 공장일에 손이 익을대로 익어 이제는 명실공히 숙련공 대접을 받게 된데다가 당초 한국에 올 때 세웠던 계획대로 돈도 꽤 모아 「코리안드림」을 이룰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번 것이 물론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것이 기쁩니다』두 사람은 주위의 한국인 동료들을 둘러보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 흑룡강성 목단시 출신인 이들이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은 지난 94년 9월.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이씨와 농삿일을 하던 윤씨는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한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듣던 소문대로 첫눈에 잘사는 나라인것 같더군요. 그러나 한편으론 사람들간의 인정은 찾기 힘든 삭막한 곳으로 비쳐졌습니다. 과연 이런 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 마구 밀려오더구만요』 그러나 그런 걱정은 잠시. 세일철강 식구들의 따뜻한 환대와 보살핌 속에서 이들의 불안감은 눈녹듯 사라졌다. 동료들은 두사람의 차림새가 허름한 것을 보자 각자 집에서 입지 않는 헌옷을 갖다줬다. 일요일이면 동료들은 두사람 손을 이끌고 어린이공원 남산타워 백화점 덕수궁 등 서울 구경길에 나섰다. 『처음에는 회사 바로 옆 가리봉동 오거리에도 혼자 못나갔어요. 그런데 하도 나들이를 많이 해서 이제는 웬만한 서울 시내 외출은 혼자서도 거뜬히 할 수 있게 됐어요』 설이나 추석 때면 동료들이 앞다퉈 자기 집으로 초대, 「외로운 명절」이 안되도록 해준 마음 씀씀이도 고마웠다. 공구 명칭도 「스패너」 「몽키」 등 낯선 외국말을 쓰는 통에 작업하면서 실수도 많았으나 이제는 두사람 다 공장에서 알아주는 숙련공이다. 냉장고 등 가전품에 쓰이는 철판에 색칠작업을 하는 도장라인에서 일하는 이씨는 『내가 이 라인에서 경력이 제일 오래됐다』고 자랑했다. 회사측의 배려도 남다르다. 권사장은 이들에게 산업연수생 규정과는 달리 다른 한국인 동료들과 같은 임금기준을 적용해주었다. 이 덕분에 두 사람은 매달 75만∼90만원 가량 받고 있다. 특근수당이 나오는 잔업이나 일요근무를 많이 할 수 있게 작업시간 배정에도 우선권을 준다. 이씨와 윤씨는 그동안 회사측이 특별휴가를 내줘 각각 지난해말과 올초에 고향에 각각 한차례씩 다녀왔다. 이 때도 회사측은 재입국할 수 있도록 체류기간을 1년 연장해줬다. 두 사람에게 마음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올해 페스카마호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동료들에게 괜히 죄지은듯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고 그 후 잇달아 보도된 중국동포사기사건은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런 마음의 기복을 알아챘는지 한국인 동료들은 전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들을 감싸 주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3년만 더 한국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면 중국에서 조그만 사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꿈에 부풀어 있다. 『한국인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겠죠. 우리는 운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년에는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조선족이 웃을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두사람의 소박한 새해소망이다. 〈李明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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