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교포「사기」에 운다/피해실태 현지취재]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0시 53분


노무송출 유학알선 결혼주선 등 한국행을 미끼로 자행된 갖가지 사기행위에 속아 재산을 탕진한 조선족피해자들의 삶은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단순히 막대한 금전적 피해만 당한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조건마저 철저히 빼앗겨버려 도저히 재기가 불가능한 극한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29일 기자가 찾아간 사기피해자 金東國(김동국·62·연길시신흥가강녕15거)는 허름한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좁은 골목길에서 60여m나 들어간 곳에 위치한 셋집에서 부인과 함께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가보겠다는 게 무슨 큰죄라고 집날리고 형님 돌아가시고 자식은 이혼당해야 하는 겁니까. 이제 더 이상 살아갈 기력도 없습니다. 실제로 몇번이나 우리 늙은이 둘이 죽으려고 마음도 먹었는데…』 한때 연변자치주 왕청현위원회 조직부장까지 역임한 김씨는 사기당한 후 부쩍 늙어 얼굴이 주름살로 얼룩진 영락없는 70대노인의 모습이다. 김씨는 돈만 내면 한국에 친척이 없더라도 방문케이스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부부 2명의 비용 3만3천원(元·한화 3백30만원)과 형님몫 2만원 등 5만3천원을 여러 사람들로부터 빚을 냈다가 사기에 걸린 케이스. 곧 가게 된다는 말만 믿고 집까지 팔아 준비하다가 한국행이 좌절되자 순식간에 집안이 풍비박산됐다. 집안에 빚쟁이가 들끓게 되자 큰며느리가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나가버렸고 형님마저 『나때문에 너까지 못살게 됐다』며 상심하다가 금년 1월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김씨는 지금도 『한국에 못가는 게 한이 맺힌다. 못가더라도 돈만은 꼭 받아내라』는 형님의 마지막 유언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귓가를 맴돈다고 털어놓는다. 김씨의 유일한 수입원은 매달 5백원씩 나오는 퇴직연금이 전부. 이 돈으로 집세 1백50원 내고 나면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매달 물어야 하는 5부이자만 해도 2천5백원. 아들3형제를 두었지만 모두가 이자 대기에 바빠 가정의 평안은 사라진지 오래다. 연변자치주 용정시에 살다가 사기사건에 휘말려 남편이 죽고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南蓮淑(남연숙·42)씨의 사연은 파렴치한 사기행위가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생생히 전해준다. 남여인 가족의 비극은 큰아들 金光華(김광화·25)씨를 선원송출로 한국회사에 취업시켜 잘살아보려는 꿈에서부터 비롯됐다. 연변발 화리무역공사를 통해 1만3천5백원을 내고 선원취업훈련까지 받았으나 결국은 돈만 떼이고 말았다. 한때 화학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운영이 부실해 실직한 남편 金明山(김명산)씨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일하면서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기사건으로 졸지에 2만여원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상심하던중 지난 5월 화병으로 숨지고 말았다. 나이 51세였다. 한숨을 푹푹 쉬고 남편이 죽자 이번엔 막내아들 東華(동화·21)군이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가 부른다며 집을 나가려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까지 악화됐다. 다시 빚을 내 치료를 받아 정신착란증세는 가라앉았으나 금년 가을에는 입이 돌아가 말도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원양어선의 꿈이 허망하게 깨진 광화씨는 산동성 청도(靑島)에 창고경비자리가 났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찾아갔으나 취직에 실패,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오지 않겠다며 연락도 끊어진 상태다. 남여인은 요즘 2만여원의 빚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남편 친구들이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말은 듣고 있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어 연락을 끊고 집에 꼭꼭 숨어 지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졸지에 남편도 잃고 아들들과도 헤어진 남여인은 현재 연길시내 모 조선족의 보모로 일하고 있다. 보모로 일하고 있는 집에서 기자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말하는 남여인은 한때 단란했던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끝없이 눈물을 쏟았다. 『아들을 한국에 보내 좀 잘살아보려고 한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내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끼도 못해주면서 남의 집에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연변의 사기피해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는 곳인 裵東杰(배동걸·35)씨 집의 사연도 딱하기 이를데 없다. 요즘 배씨의 집에는 부인 金玉花(김옥화·33)씨 혼자 여자어린이 셋을 데리고 산다. 둘은 배씨의 딸이고 하나는 형님의 딸이다.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깡패들을 동원해 못살게 굴자 배씨가 피신해버렸기 때문이다. 배씨의 형님 내외 역시 93년말에 피신을 한 후 가끔 소식이 들려올 뿐 집에 나타나질 않아 조카까지 떠맡고 있는 형편이다. 사기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만 해도 배씨는 하얼빈농업대학에서 경영하는 회사의 중견사원이었다. 지난 90년에는 1년간 일본의 농업대학에 가서 버섯균의 배양기술을 연구하고 왔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기술자였다. 친척방문건이 불발로 결말나자 배씨를 통해 한국행을 신청했던 15명으로부터 40만원, 한국돈으로 무려 4천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 고스란히 빚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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