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평소와는 달리 방청객들이 3분의 1 수준인 70여명에 불과해 늦가을 날씨 만큼이나 썰렁한 분위기.
방청객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이날 재판일정이 지난 24일 5차 공판에서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일반방청객들이 크게 줄었고 광주유족회 소속 회원 등 평소 꼬박꼬박 재판에 참석하던 방청객들마저 나오지 않았기 때문.
한편 일부 방청객들은 이날 법정에 나온 증인들의 증언내용에 별다른 내용이 없자 재판도중 빠져 나가기도.
○…검찰측과 변호인측은 이날 지난 80년 당시 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는지의 여부를 놓고 입씨름.
金相喜부장검사가 이날 시위대의 과격성을 강조하는 林守元씨에게 『시위대 시민 5,6명이 교도소를 향해 돌진해 온 것이 과연 습격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계엄군의 과잉대응을 추궁.
이에 대해 石鎭康변호사는 『金新朝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때도 북한 무장공비는 20여명에 불과했다』며 『시위대원 수가 무슨 문제냐』고 반박.
○…재판장인 權誠부장판사는 이날 공판에 앞서 이틀째 재판을 열게 된 것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세히 설명.
權부장판사는 『어제에 이어 오늘 재판을 연 것은 오후 6시 이후에도 심리하는 야간재판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제 출석했다가 증언을 하지 못하고 오늘 다시 출석한 증인들은 하루를 낭비한 셈이 돼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언급.
○…權誠부장판사는 이날 변호인들에게 『앞으로는 공통된 입증사항에 대해서는 가급적 신문내용을 하나로 통일해 달라』며 신문시간을 절약해 줄 것을 요구.
權부장판사는 『여러 변호사들이 증인들에게 같은 내용의 신문을 중복질문해 재판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신문 문항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오지 않도록 변호인들이 노력해 달라』고 요청.〈河宗大·金泓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