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K칩 물어뜯는 美 ‘특허 좀비’…韓 HBM을 먹잇감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5일 04시 30분


HBM-낸드 기술 특허침해 주장
“美로 수입 금지를” ITC에 제소

미국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K반도체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낸드플래시의 미국 수입을 막아 달라며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국 특허권에 힘을 실어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기조 속에 K반도체가 이른바 ‘특허 좀비’ 기업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ITC에 따르면 미 특허기업 모놀리식3D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를 상대로 ITC에 소장을 제출했다. 모놀리식3D는 SK하이닉스의 HBM2E, HBM3, HBM3E와 3D 낸드(SSD) 전 제품군이 자사의 ‘3D 적층 기술 특허(미국 특허 531호 등)’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모놀리식3D는 최근 SK하이닉스의 실적을 견인해 온 첨단 반도체인 HBM을 정조준했다. 모놀리식3D는 소장에서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칩 자체는 물론이고, 이를 탑재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까지 미국 내 수입·유통·판매를 전면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업계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에서 최대 실적을 내는 가운데 이 같은 소송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수입 금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ITC의 수입 금지 권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TC가 수입 금지 결정을 내려도 미 대통령과 무역대표부(USTR)는 이를 뒤집을 권한이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합의금을 노리는 글로벌 ‘특허 좀비’들이 더 활발하게 우리 기업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韓 HBM 먹잇감으로… 트럼피즘 앞세워 합의금 노리고 달려들어
美 ‘특허 좀비’, 한국 반도체 공격
과거 등록 모호한 특허로 괴롭혀
기업, 비용-시간 부담에 결국 합의
반도체 공급망 통제 강화 노린 美
ITC 제소 등 압박수단으로 활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역대급 실적을 내면서 합의금을 노리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의 공세가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29일 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 낸드플래시 등의 대미 수입금지를 요구한 미국계 NPE 모놀리식3D는 앞서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동부 연방지방법원 마셜지원에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동일한 내용의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법원 소송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수입금지를 목적으로 한 국제무역위원회(ITC) 제소까지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압박 수위를 높이며 조기 합의를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합의금 먹잇감’ 되는 한국 반도체 기업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이른바 ‘특허 좀비’로 불리는 NPE 기업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월 중국계 NPE인 어드밴스트 메모리 테크놀로지(AMT)로부터 미국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SK하이닉스가 부스터 회로 등 자사의 핵심 특허 4건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LG반도체 출신 홍춘기 대표가 설립한 미국 NPE인 넷리스트와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의 HBM과 DDR5가 자사 D램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법적 다툼 끝에 넷리스트에 2023년 4월 3억315만 달러, 2024년 11월 1억1800만 달러 등 총 4억2115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넷리스트는 지난해 11월 ITC에도 삼성전자를 제소한 바 있다. 넷리스트는 2021년 SK하이닉스를 상대로도 4000만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NPE는 과거 등록한 포괄적이고 모호한 특허를 무기 삼아 기업을 향해 특허권 침해 소송을 벌여 수익을 낸다. 피소 기업이 이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다 결국 합의를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모놀리식3D는 2010∼2015년의 원천 기술 우선권을 유지한 채 2024∼2025년에 최신 제품인 HBM3 구조에 맞도록 특허 청구항(권리 범위)을 손질해 다시 등록했다. SK하이닉스의 HBM 제품들이 시장에서 주력으로 자리 잡자 이를 겨냥해 자신들이 가진 기존 특허를 재정비한 것이다.

● 트럼프 행정부 개입 가능성 우려도

반도체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강화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특허 소송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특허청은 특허무효심판(IPR)을 쉽게 개시하지 않도록 요건을 강화하면서, 피소 기업들이 이를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자국 특허권 보호를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는 상황에서 ITC 제소가 효과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ITC는 미 연방정부 기관으로 수입금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에 대해 대통령과 미 무역대표부(USTR)가 산업 파급력을 감안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 행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이란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 법무부와 특허청은 삼성전자와 넷리스트 간 ITC 소송과 관련해 “수입금지와 같은 강력한 특허 집행이 공공이익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HBM뿐 아니라 범용 메모리까지 최근 품귀 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귀한 몸’이 된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ITC 소송과 USTR 심의가 K반도체에 새로운 압박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수익성이 좋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도 NPE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기업들이 특허를 많이 내는 등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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