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동양화과, 전공과목에 추가
연세대 국문과, 자료 탐색-교정 허용
AI 사용 경계했던 분위기 탈피
‘AI 번역’ 오류 찾기 등 비평도 강화… “효용성 꿰뚫고 있어야 한계 넘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의 어문·예술 계열 학과들이 3월 새 학기부터 인공지능(AI)을 정규 교과 과목에 적극 도입하는 것으로 4일 나타났다. 그간 AI를 악용한 커닝이나 과제 대필을 막는 데 집중했던 대학가가 이제는 AI를 필수 도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특히 통번역이나 미술 등 사람의 일자리가 빠르게 위협받는 분야일수록 AI와의 공존을 통한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창작 파트너’ 된 AI
서울대 동양화과는 이번 학기 전공과목 ‘통합매체3’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 생성 실습을 진행한다. 직접 그린 밑그림을 AI를 통해 완성도 높은 이미지로 변환하거나, 작품 세계관 구축을 위한 자료 조사에 AI를 활용하도록 장려한다. 이를 위해 학생에게 고성능 노트북 지참을 권장하고 유료 AI 모델 구독을 안내하는 등 강의실 환경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는 AI를 활용한 작품의 공모전 출품을 금지하는 등 AI 사용을 경계했던 미술계 일각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움직임이다. 수업을 맡은 김중일 강사는 “그림을 그리는 기술 자체는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왜 그림을 그리느냐’는 물음은 사람의 영역”이라며 “AI는 도리어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미감과 취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학 창작 교육에도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의 전공과목 ‘시 쓰기’는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한 자료 탐색과 문장 교정에 한해 AI 사용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창작의 고통은 인간이 짊어지되, 방대한 자료 수집과 기술적인 다듬기 과정에는 AI의 효율성을 빌리겠다는 취지다. 김호성 강사는 “예컨대 심해(深海)에 대한 시를 쓴다고 했을 때, 심해어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거나 글감을 찾는 건 AI를 통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는 전공과목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 문학’에서 ‘사망한 소설가가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떤 작품을 썼을지’ 등을 추론하는 데 AI를 활용한다.
● 어문계열은 ‘번역 오류 찾기’ 등 AI 정면 수용
AI 통번역기의 직격탄을 맞은 어문계열 학과에선 더 깊숙이 정면 수용하는 추세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는 교양과목 ‘AI-디지털 비즈니스 중국어’에서 챗봇으로 가상의 출장 상황을 설정해 대화를 연습하거나, AI를 활용해 디지털 명함과 회사 소개 자료를 만드는 등 실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담당 강사는 “AI로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대화를 연습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단순 번역을 넘어 AI의 한계를 파악하는 비평 교육도 강화됐다.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의 전공과목 ‘중한 번역 연습’은 AI 번역기가 내놓은 결과물의 문법적, 문맥적 오류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업의 핵심으로 삼았다. 초벌 번역은 AI에 맡기되, 그 완성도를 높이는 데서 전문성을 찾는 셈이다.
대학에선 “교육 현장에서 AI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학기 수업 일부에 AI 도입을 허용할 계획인 김승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 자체가 현실이랑 맞지 않는다”며 “어떻게 책임감 있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태훈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기술의 효용을 꿰뚫고 있어야 그 한계를 넘어선 예술적 능력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학교 본부 차원에서 AI 활용을 장려하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고려대는 올해 모든 학과에서 AI 융합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AI 관련 교원을 적극 초빙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AI를 창의성의 도구로 활용하되 그 정보나 해결책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AI 가이드라인’을 최근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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