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의 ‘국제전’ 양상 사라져야 한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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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이 양극화되는 강대국정치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떤 소국 내에는 정치적 이질성이 한데 내재되어 있어서, 두 거대세력의 인력(引力)이 작용하는 ‘경계(boundary)’에 위치하게 된다. 이런 나라를 ‘경계국가(boundary stat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는 우크라이나다. 서부에는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이, 동부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의 정치성향은 정반대다.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희구해 EU에 접근하기를 희망하는 한편, 러시아를 적대한다. 반면 러시아계 주민들은 슬라브 민족주의와 소련에 대한 향수가 짙어 친러시아적 성향을 보이고, 그 반대급부로 서방과의 협력에 제동을 건다. 선거에서도 친EU 정당과 친러시아 정당이 극명하게 대립하며, 정당 득표율은 동서 간에 확연하게 다르다. 요컨대 우크라이나 서부는 서방 쪽으로, 동부는 러시아 방향으로 인력이 작용한다.

경계국가의 제1특성은 불안정성이다. 지역적·정치적 대립 때문에 국가적으로 단결하기 쉽지 않다. 상이한 방향으로의 인력은 곧 서로를 밀어내는 척력(斥力)이 된다. 이 불안정성 때문에, 국제적 대립이 발생할 경우 나라가 제대로 지탱되기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0년대 들어와서 대사건들이 발생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서방으로의 인력을 작동시킨 유로마이단 시위(2013), 동부가 러시아로 더 다가가게 한 크림반도 병합(2014)이 일어났다. 2015년에는 서부의 정부군과 동부의 반군 간 돈바스 전쟁이 발발한다. 한 국가의 안에까지 전이된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적인 세력다툼이 분할(partition)과 열전(hot war)의 양상으로까지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우크라이나는 두 강대세력에 끌려 다니는 처지가 됐다. 지정학적 단층대가 더 벌어질 때 경계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두 개로 쪼개져 반대편의 단층에 각각 붙게 되는 것이다.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이라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정치적으로 상이한 선호를 가진 국민들이 있고,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경계국가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이를 활용해서 정치권력을 잡고자 한다.

‘이번 총선은 한일전.’ 21대 총선에서 여당의 총선홍보 매뉴얼에 담긴 구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당은 친일 논란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해왔다. 민주당은 지난해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를 조직하기까지 했다. 정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정당 차원으로까지 끌어온 것은, 이 주제를 선거에 활용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른바 ‘일풍(日風)’을 일으킨 것이다. 작년 여름 백색국가 제외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문 대통령 지지율을 54%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9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은 정치적으로 이득인 일풍 카드를 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야당의 전통적인 ‘북풍(北風)’에 대한 반격으로 보인다. 북풍은 현 야권이 선거 때마다 들고 나온 주제이며, 안보문제와 연결되어 한때 상당한 효과성이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야당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집권당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적절한 근거 없이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 것이라고까지 했다. 선거에서 여당은 일본을, 야당은 북한을 끌어들였다. 한 나라 안의 총선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대리전(proxy-war) 양상이 된 모양새다.

선거에서 사용한 공포전략은 집권 이후에도 계속된다. 민주 국가에서는 외교정책이 여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임덕을 딛고 국정주도력을 확보하려면 지속적으로 하강하는 대통령 지지율을 어느 정도 지켜야 하고, 선거 때 지지했던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당연히 가장 쉽다. 대선에서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가 과거에 종속되고, 특히 정책적인 측면에서 제약이 생긴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펼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국익과 정치적 이익이 상충하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북한과의 대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 강경정책 공약을 이용해서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논리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문재인 정부에게도 일본과의 갈등은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풍조는 한국의 국가이익이라는 목표를 놓고 봤을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 여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한미일 공조가 끊어지고, 현 야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북·중과의 긴밀성이 약화될 것이다. 동서로 나뉘어진 우크라이나가 공간적으로 분할되었다면, 외교가 계속 바뀌는 한국은 시간적으로 분할되는 것이다. 이렇게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정책으로는 동아시아 환경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포괄적이어야 할 주변국 외교는 도리어 파편적으로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기는커녕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맥을 못 추게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의 길은 더 요원해진다.

그러나 북한과 일본에 대한 괴담이 통했던 현재까지의 추세를 생각하면, 각 정파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이러한 선거전략을 채택할 유인이 있다. 투표율이 100%에 한참 모자라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양 진영이 자신들의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최대한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각 지지자들의 민감성이 높은 민족감정이나 위기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여당의 지지자들 중에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야당 지지자들 가운데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따라서 여·야 할 것 없이 일풍과 북풍을 일으키는 것이 각자에게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이다. 경쟁하는 상대방이 무엇을 선택하든 이렇게 ‘바람 잡는 것’이 항상 이득이라는 점에서, 경제학에서는 이를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라 한다. 그리고 이는 각 정파에 가장 좋은 전략이기 때문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국제전이 되는 한국 선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연유로 국가의 만성적 분열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속칭 ‘빨갱이’, ‘토착왜구’라는 말은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타 국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언어적인 증거이다. 더하여 양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단절적인 외교가 반복된다. 지속적이지도 포괄적이지도 못한 외교는 결국 국력 약화로 연결되고,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되므로 궁극적으로 정치권에도 손해이다. 그러나 주변국에 대한 괴담을 퍼뜨려 선거를 ‘국제전’으로 만드는 것이, 개별적인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누를 수 있는 좋은 전략이 항상 되기 때문에 알면서도 이 구도를 선택하게 된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이다.

결국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괴담으로 바람 잡는 정치인들을 선거에서 강력히 심판해 권력을 쥐어주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 중 어떤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또 다른 이들은 북한의 침략에 대해 특별히 더 분노할 것이다. 물론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은 언제나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타국을 현재의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국익을 저해하는 정략으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정당에는 의석을 주면 안 된다. 만약 일풍과 북풍이 통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속을 뿐 아니라, 한반도 분단이라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강대국들의 계략에 스스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양극화된 냉전 질서에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을 헌납하는 꼴이다. 비상한 결단이 부재한 채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두 개의 게임, 즉 국내 선거와 국제 권력구도의 측면에서 한국 국민들은 두 번 속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1800년대 중반부터 열강의 침략에 많은 풍파를 겪어 왔다. 구한말 지식인들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장지연 선생이 쓴 논설문인 ’단체연후민족가보(團體然後民族可保, 단체를 이뤄야 민족을 보전할 수 있음)‘에 따르면 구 한국의 비극은 ’정당들 사이에서 파벌을 나누고, 민족 가운데서도 각자 외세에 빌붙는 데‘ 있었다. 분열로 인해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지금 우리 상황이 선생의 때와 너무도 비슷하다. 여당은 일제강점기로 돌아가는 것을, 야당은 6.25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역사가 반복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고통의 씨앗이 뿌려졌던 구한말로 돌아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장지연 선생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단체(團體)‘, 즉 국민적 단결이 필수하다. 경계국가의 생존전략은 국익을 기초로 한 단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빨갱이와 토착왜구의 대결‘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켜 세계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밀도가 낮은 행성(行星)은 양편의 두 항성(恒星)에서 강력한 중력이 작동될 때,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수 있기는커녕 버티지 못하여 두 동강이 난다. 더하여 선생은 ’집안이 멸망하여 그 사사로운 계책마저 씻은 듯이 헛것이 되어 버린다‘고 당시 권력자들에게 일갈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국가의 중대사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하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 분열로 국민들을 다스리려 한다면, 종국에는 그들 아래의 땅이 갈라져 정치인들 역시 더 이상 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우리나라 1세대 국제정치학자인 서울대 외교학과 이용희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한국의 외교는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강대국의 목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내걸었던 선거 전략들은 냉전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측면이 다분하여 매우 실망스럽다.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기보다, 분단상황을 계속해서 유지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계속해서 재생산해낼 것인가, 여기서 끊고 새로운 날들을 영리하게 기획할 것인가를 이제 국민들과 정치권이 선택해야 한다. 먼저 강대국의 프레임이 만들어낸 갈등 구도에서 벗어나야 마땅하다. 그 다음 포괄적·지속적인 외교를 통해, 통일을 향해 나 있는 대한민국의 길을 찾아야 한다. 희곡작가 이강백의 작품에서처럼 ’파수꾼‘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철조망 뒤에 있다는 이리 떼에 속지 말고, 흰 구름 같은 신(新)질서를 구축해야 할 때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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