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끌어안지 못하는 나라가 통일 할 수 있나 [우아한 청년 발언대]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입력 2020-05-31 12:15수정 2020-05-3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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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임진각을 찾은 어린이들이 철조망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2018.09.19 동아일보DB
서울에 있는 한 탈북 청소년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학생들은 많이 어려워했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따라왔고, 나도 가능한 한 쉽게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다. 함께 수학 공부를 하다가 문득 이런 걱정이 들었다. 이 친구들이 직장을 구해서 남한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까지는 입학한다 한들, 그 이후부터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뒤쳐진 상황에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만큼의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게다가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라는 핸디캡을 생각하면, 탈북 학생들은 실제로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야 할 것이었다. 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니 탈북 학생들의 진로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날 저녁은 특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탈북민의 남한사회 부적응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은 다른 남한 주민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이는 어려운 고용상황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탈북민의 실업률은 10%를 상회하고 있다. 남한 전체의 실업률이 3%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궁극적인 문제점은 탈북민의 생산성이 다른 남한 주민들보다 낮다는 것이다. 노동수요는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 바꿔 말하면, 제품 생산의 이익보다 인건비가 높아진다면 기업은 고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연구결과 탈북민의 인적자본은 상당히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김병연·이정민 교수가 인적자본의 핵심인 유동성 지능을 측정한 결과, 북한이탈주민의 인지능력은 일반적인 남한 주민의 43.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북민의 노동생산성이 평균적인 수준보다 많이 낮을 것임을 시사한다. 노동생산성은 물적 자본과 기술 뿐 아니라 고용된 개개인의 인적 자본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전 연령대에서 남한 일반주민과 탈북민의 인지적 능력의 격차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 내 적절한 재교육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차이를 성장 이후에 근본적으로는 해소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인지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단계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큰 관심을 쏟고 특별히 배려해야 마땅하다. 이들이 높은 인적 자본으로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다른 사회 구성원들처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탈북 청소년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따갑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탈북 청소년 학교는 건물 계약 만료로 인해 서울 내 다른 자치구로 교사(校舍)를 이전하려고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에서 학교 이전을 위해 학교용지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해당 자치구에서 보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탈북민을 기피하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구청 회의록에서 ‘탈북민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교육시설이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기피시설에 해당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라는 점이 반대의 논거가 된 것이다. 현재 이 학교는 이전계획이 중단된 상태에서 학사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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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들이 효과적으로 교육받지 못한다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고, 끝까지 사회적 약자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학생들의 미래를 막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 마땅한 탈북 청소년들의 기회를 도리어 빼앗은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다. 한편 ‘오만’은 탈북 학생 뿐 아니라 사회전체에도 비극이 될 것이다. 탈북민의 부적응이라는 사회적 비용과, 그에 따른 국가적 부담의 증가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탈북민의 인적자본 축적 뿐 아니라, 인적자본 발휘 기회도 빼앗고 있다. 최근 총선을 치르면서도 탈북민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드러났다. 탈북자로서 국회에 진출한 태영호 당선자에 대해서 출마 전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당 지도부 일각에서조차 그의 공천을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탈북자에게 국정을 맡겨도 되느냐라는 의심이 발동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태 후보가 당선된 후에는 지역구인 강남지역 아파트의 명칭을 북한식으로 바꾸어 조롱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았다.

이에 대해 당선자 개인에 대한 모독이라기보다는 특정 정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풍자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태영호에 대한 풍자 혹은 조롱에 대해, 그 동기를 분해(decomposition)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갖고 있다.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자스민 의원에 대해서도 필리핀계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이번 총선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강남구 지역을 대상으로 재건축 지역에 탈북민 아파트를 의무비율로 법제화 시켜달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에는 탈북민과 재중동포 일반에 대한 차별적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현재는 15만 명에 달하는 동의를 받은 상태다. 태영호 당선자에 대한 ‘풍자’에 탈북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부재했는지 진정으로 반문하고 싶은 이유이다.

또한 탈북 엘리트들이 배신자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언제 다시 배신할지 몰라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탈북민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남한행을 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믿고, 두 개의 체제 사이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탈북 엘리트들에게는 선택의 비용이 높아지는 꼴이다. ‘배신자’라는 비난은 구(舊) 북한 지도층들이 결국 남한 사회를 떠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까 우려스럽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우위를 여러 방면에서 점해가야 하는 상황이다. 탈북 엘리트과의 협력이 어려워진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생각으로 이들의 인적 자본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낭비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보여온 풍조를 보면 탈북민에 대한 차별적 사고가 깊게 서려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탈북민을 다른 남한 주민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에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가 변형된 형태로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의미했다면, 최근에는 북한 주민에 대한 멸시로 변화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반공주의가 전화(轉化)된 오만과 편견은 탈북민을 남한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낮은 인적자본에 더하여, 탈북민의 열악한 고용상황과 사회부적응은 필경 여기에서도 기인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 주민을 같은 동료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북한 주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는 남한 주민들과 그렇지 못한 북한 주민들 간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통일은 실패할 것이다. 만약 통일 이후에 북한 출신의 대통령이 나온다면 남한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의원 자격만으로도 논란이 있었던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것은 앞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다. 동·서독의 인구비율이 약 1대 4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옛 서독지역 전체가 그녀를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 인정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생각난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배척이 지속된다면, 북한 주민들 역시 남한 주민들을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신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탈북 청소년 학교의 이전 무산과 탈북자의 국회의원 자격논란은, 우리 사회가 탈북민과 ‘화학적 결합’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로서는 좋지 않은 듯하다. 통일을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화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동북아시아의 냉혹한 국제정세를 이겨낼 유일한 동력은 남북한 사이의 구심력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우리가 통일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통일은 윈윈(win-win)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한쪽이 피해를 보는 관계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하다. 북한 주민들 역시 많은 기회들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남한이 이득을 보는 국가발전전략으로서 통일을 생각한다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은 피지배적 약자가 될 것이다. 이는 국가적으로 큰 복지부담을 야기할 뿐 아니라, 사회적 불만으로 통일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실질적 국민인 탈북민조차 평등하게 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반도 통일을 이룩한 한국사회가 북한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 만무하다.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남북통합을 가로막는 오만과 편견을 버려야 할 시점이다.

손세호 서울대 경제학부 16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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