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건 부적절 처리”… 박근혜 정부 檢실세 공개비판하며 좌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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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간부 전격 인사]법무부 이례적 ‘문책 인사’ 공표

“과거 중요 사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했다고 문제가 제기돼 인사 조치했다.”

법무부는 8일 검사장·고검장급이 다수 포함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이번 인사가 문책성 인사임을 공표했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뀐 직후에는 일부 고위 간부를 조용히 한직으로 보내 사표를 내도록 유도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직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좌천시킨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날 한직으로 발령 난 검찰 간부들 중 상당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구속 기소)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청와대에 입성한 2014년 이후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이 수사했던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 ‘정윤회 문건’ 파문 등은 지난 정권에서 논란이 된 대표적 사건들이다.

○ 코너 몰린 검찰에 일격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대구고검 차장)이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면직을 당한 지 단 하루 만에 이처럼 대대적인 좌천성 인사가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검찰 내에 거의 없었다. 인사 대상자들은 법무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직전에 본인이 인사 대상임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좌천 대상이 된 한 간부는 “조용히 물러나라고 하면 그럴 의향이 있는데, 이렇게 망신을 주려는 이유가 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가 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의 감찰 결과 발표 바로 다음 날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실세로 불렸던 이들에 대한 ‘솎아내기’ 인사를 낸 것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그간 검찰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예전처럼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사직을 권고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재판을 받고 있는 국정 농단 사건처럼 자칫 직권남용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번처럼 다소 과격한 좌천성 인사를 내는 것뿐이었다.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의 중징계로 검찰이 코너에 몰린 상황은, 청와대가 검찰 내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인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좌천 대상이 된 검찰 간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53·19기) 등 4명은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반면 광주고검 차장검사와 서울고검 검사로 각각 전보된 유상범 전 창원지검장(51·21기)과 정수봉 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51·25기)은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형사1부장으로 재직하며 수사를 함께 했던 사이다. 이들이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은 자칫 자신들의 사직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자인하는 모양새로 비칠까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앞서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국정 농단 사태를 막지 못했다”며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위협 우려”

법무부의 이날 인사는 앞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승진 임명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 인사위원회 등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기인사는 인사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번처럼 개별 인사를 할 경우 인사위원회가 필수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이번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인사 발표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색이 강한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이 줄줄이 인사 불이익을 받은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청와대가 너무 험하게 인사를 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초반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려는 것 같다”며 “검찰 개혁이 자칫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심는 수단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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