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복거일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 치적을 남기는 데는 보수 야당의 협력이, 적어도 용인이 필수적”이라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이 감탄할 만큼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당선된 후보가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것은 곤충의 우화(羽化)와 같다.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모습은 극적이고 화사하다. 그런 만큼 힘들다.
무엇보다도, 후보의 껍질을 과감하게 벗는 과정이 쉽지 않다. 당선될 때까지 자신을 감쌌던 사람들의 대다수를 허물로 뒤에 남기고 혼자 날아오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고 위험하다.
이 과정엔 세 가지 이익이 뒤섞여 경쟁한다. 하나는 대통령 자신의 이익이고, 둘은 지지자들의 이익이고, 셋은 나라의 이익이다. 이 세 이익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경우는 없다.
대통령은 나라의 이익을 살피는 것이 임무고 업적을 남기는 길이므로, 대통령 자신의 이익과 나라의 이익은 대체로 합치된다. 지지자들이 후보를 지지한 대가로 바라는 이익은 국민들의 평균적 이익보다 훨씬 크므로, 다른 시민들의 몫을 가져가게 되어, 나라의 이익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초과이익을 실현해 주어야 대통령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자연히 ‘대통령의 성공’은 지지자들의 이익 추구를 억제하는 데 달렸다.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훌륭한 정치가가 되려면 “훌륭한 도살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실천하기 힘든 과제다. 지도자는 추종자들을 이끌지만, 추종자들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지도자는 추종자들의 노예”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특히 힘든 것은 이념과 정책에서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지지자들의 이익은 물질적 특혜만이 아니라 이념적, 정책적 선호도 포함한다. 후보로서 내건 공약들은 잠재적 지지자들의 생각에 맞춘 것들이어서 민중주의적 성격이 짙다. 비록 선거를 통해서 시민들의 위임사항(mandate)이 되었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이행하면, 문제들을 낳아 나라의 이익을 해친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에서 지나친 부분은 버리게 된다. 여기서 대통령 자신의 이익과 지지자들의 이익이 부딪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지지자들을 통제하는 힘이 작다고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걱정한다. 문 대통령이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정책을 신축적으로 집행하지 못하고 잘 조직된 지지 집단들에 휘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변수가 보수 야당이다. 문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 치적을 남기는 데는 보수 야당의 협력이, 적어도 용인이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문 대통령은 적지 않은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 대통령의 안보에 관한 견해는 격렬한 거부 반응을 불렀으니, 태극기 집회는 북한에 유화적이고 중국에 굴종적인 지도자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걱정의 표출이었다. 그런 불안감을 가라앉혀서 국정을 원만히 운영하려면, 야당의 협력을 얻는 일이 긴요하다.
주목할 점은 야당과 협의해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지지 세력을 견제하고 대통령의 독립성을 늘리는 효과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 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난 현실 감각으로 추진한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서 얻은 정치적 이익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의 두드러진 업적이 이라크 파병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줄이고 FTA로 미국과의 통상을 늘린 일이 꼽힌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이 걸어가야 할 길을 가리킨다.
대통령의 직무가 그리도 힘들므로, ‘준비된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병사하고 해리 트루먼 부통령이 자리를 이었을 때, 트루먼은 원자탄을 제조하는 ‘맨해튼 사업’이 여러 해 동안 진행됐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유고 시 대통령이 될 부통령도 모르는 것들을 알고 처리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욱 그러할지 모른다.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을 모신 터라, 문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에 아주 가까운 상태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중요한 자리들을 채운 첫 인사는 시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다수의 시민들이 감탄할 만큼 화사한 날갯짓으로 난기류에 휩싸인 한반도의 하늘로 새 대통령이 날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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