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삼현]청탁금지법 한 달, 시행지침 보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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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새로이 제정된 법을 평가하기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 파장을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선 전 국민이 매일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행위가 법 위반이 되는지를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심지어 담당기관 수장인 국민권익위원장도 언론에 나와 의심되면 하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다.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혹시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 신고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청탁금지법에 거는 기대감이 큰 듯하다. 법률 하나로 대한민국을 부패 없는 선진사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잘 적응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갖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28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국민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지침이 너무 경직돼 있어, 향후 개별 사안에 따라 일부 해석에 대해선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즉, 이 법이 적용 과정에서 입법 취지와 달리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의 배경은 여러 각도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공직자나 교원 등의 복지부동으로 시민이나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 시행 후 공직자들은 가능한 한 대민 서비스를 기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시민들을 찾아가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공직자들이 책상에서만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자들은 때로는 고용절벽에 직면한 제자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기회가 되면 일자리도 알선해야 한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이 모든 것이 범죄 행위가 되어 버렸다. 생계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제자들의 가방끈을 교육자가 직접 끊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갑의 지위를 남용하는 이들을 통제하고자 했던 청탁금지법이 오히려 을에게 피해를 주는 모순을 가져온 것이다.

 이 밖에도 헌법재판소장의 ‘한정 위헌’ 발언 배경에는 소비절벽에 대한 우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화훼 농가가 철퇴를 맞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대리운전기사들도 일거리를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는가 하면, 식당 종업원들도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한다. 대출을 받아 1차산업을 영위하는 농어민들의 한숨 또한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찌 되었든, 권력자들의 부패를 막고자 했던 청탁금지법이 서민들을 죽이는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만으로 청탁금지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논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수방관만 하기에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다. 가장 시급한 해법은 헌법재판소장의 언급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국민권익위는 ‘의심되면 하지 말라’는 식의 지침만 제정할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신속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해석 전문 기관인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법제처 등에 의뢰하여 청탁금지법 시행 지침을 조속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국민이 가능한 한 국가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만약 지침 개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당장 내년에라도 법 개정을 단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청탁금지법#부정 청탁#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헌법 제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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