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청와대… “대통령 결정 기다리자” 쇄신-내부조사 미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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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당정청 총체적 난국]
자중지란 여당… “의총서 찌라시 인용” “뭐든 들어봐야” 계파 갈려 언쟁
눈치보는 정부… 장관들 소집한 황교안 총리 “언행 신중”… 입단속 논란 자초

갈피 못잡는 정부-여당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부와 여당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위쪽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27일 국무위원 긴급 간담회를 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아래쪽 사진 오른쪽)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뉴스1·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갈피 못잡는 정부-여당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부와 여당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위쪽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27일 국무위원 긴급 간담회를 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아래쪽 사진 오른쪽)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뉴스1·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순실 게이트’로 국가 리더십이 사실상 공백 상태다. 그럼에도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청와대-집권여당-정부’의 3각 축은 제 기능을 못하고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 씨의 연설문 수정을 시인한 뒤 청와대는 자체 조사조차 하지 않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책임론을 놓고 자중지란 양상으로 흐르고, 공직사회는 경제·안보 쌍끌이 위기 상황에서 복지부동이 심화되고 있다.

○ 식물 청와대

 청와대는 27일에도 위기 타개를 위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여야의 전면 쇄신 요구에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연설문 유출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는 정호성 대통령부속비서관, 김한수 행정관 등에 대한 내부 조사마저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재원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 (참모의 일괄 사표 제출에 대한) 의견을 모아 보자고 해서 수석비서관이 전부 모였다”며 “그 자리에서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지금 당장 했을 때 대통령이 너무 힘드실 수 있으니 기다려 보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사표 제출을) 미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결단이 있을 때까지 지켜 보기로 뜻을 모았다는 얘기다.

 이 비서실장은 예결특위에서 ‘문고리 3인방’(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에 대한 지적에 “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니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제 눈엔 안 보였다”고 했다. 정 비서관에 대해선 “청와대에 들어간 다음 정시에 퇴근한 일도 없고 집에서 식사할 시간도 없는데 (최 씨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더라”고 ‘대리 해명’을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사과문을 우병우 민정수석이 작성했다는 의혹을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김성우 홍보수석비서관의 조력을 받아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을) 작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앞서 이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작성한 것’이라고 허위 답변한 것일 수 있어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정무수석은 “사과문은 대통령이 홍보수석에게 구술하고, 홍보수석이 문안을 다듬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사과문이 24일 저녁 ‘6인 대책회의’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우 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6명이 최순실 PC 의혹 보도가 나간 당일 저녁 대책회의에서 사과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 씨의 존재와 역할을 이들 6명만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 길 잃은 여당

 새누리당은 특별검사 도입을 전격 수용하며 대외적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지만 내부에선 안일한 사태 인식을 보여주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의 비박(비박근혜) 진영 의원들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일부 비박 의원이 시중에 떠도는 최 씨 의혹을 거론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찌라시’(사설 정보지)에서 나도는 얘기를 의총에서 인용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고, 이장우 최고위원은 “일부 의원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비박 강석호 최고위원은 “지금은 잘못했다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다 들어야 할 때”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김진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최 씨에게 (연설문 등과 관련해) 물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북한인권결의안을 김정일에게 물어봤다고 당시 장관이 주장하는데도 버티고 있다”며 “지인(知人)에게 물어본 것이 나쁜가, 주적(主敵)에게 물어본 것이 나쁜가”라고 말했다. 최 씨의 국정 개입 논란을 ‘송민순 회고록’ 파문과 비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묻지 마 엄호’를 하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번 주부터 내년도 예산안과 법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시작됐지만 새누리당은 사실상 전략 마련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내년도 나라살림 예산이 빈틈없이 짜이도록 전력투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핵심 당직자는 “청와대가 인적 쇄신 등 당의 요구에 어떤 응답을 내놓은 뒤에야 당이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 눈치 보는 정부

  ‘최순실 블랙홀’에 국정 마비 위기에 몰린 정부는 청와대 눈치만 살필 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국무위원과 공직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잘 인식해 말과 행동에 신중하고 자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놓고 최근 사태와 관련해 공직자의 ‘입단속’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이날 예결특위에서 황 총리를 향해 “공직기강 당부는 공직자들을 보고 할 게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홍수영 gaea@donga.com·강경석 / 세종=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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